글 싣는 순서

버마부터 지금까지, 미얀마를 바라보다

1. 황금의 나라에 드리운 군부 통치의 그림자

2. 미얀마와 연대하는 활동가 3인 인터뷰

3. 5·18정신이 쏘아올린 공, 미얀마 '봄의 혁명'에 닿아

 

광주 5·18이 있었기에 1987년 6월항쟁이 있었고, 또 2016년 촛불혁명이 있었다. 일각에서 한국민주주의 퇴보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설령 퇴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프랑스 민주주의 퇴보의 ‘마지노선’을 구획했듯이 광주 5·18정신은 미래의 한국 역사 속에 군의 정치개입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음을 못박았다. 문민우위는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지지하고 있는 불변의 민주주의 가치가 되었다.

2년 가까이 ‘봄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은 한국의 광주 5·18정신이 일구어낸 문민통치의 원리가 미얀마에도 뿌리내리길 소망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도 광주 5·18과 같은 국가폭력에 맞서는 시민항쟁이 있었다. 국제사회의 눈총과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단일대오로 일관한 일괴암(一塊岩)과 같은 미얀마 군부는 1988년에 있었던 이른바 ‘8888 민주항쟁’, 2007년에 승려들이 앞장섰던 ‘샤프란 혁명’을 무지비하게 진압했다. 이어 2021년 2월 1일 쿠데타 이후 전국적으로 전개된 시민불복종운동(CDM)을 향해서도 총구를 겨누었다. 이들은 아동과 여성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 땃마도는 이러한 반복적인 민간인 학살을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고 강변하고 있다. 오랜 기간 국가와 국민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군이다. 하지만 땃마도는 경제특권을 공유하는 이익집단일 뿐이다. 특히 비취, 루비 등과 같은 보석류의 채굴과 판매가 군부의 귀중한 자금원이다. 쿠데타의 주역 민아웅흘라잉은 물론 핵심 군 고위층들은 MEHL, MEC와 같은 거대기업들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호의호식하고 있다. 군은 2021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이유를 들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그들의 속내는 그들만의 ‘경제공동체’를 수호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땃마도의 이중성은 군 최고지도자들이 미얀마군을 사익집단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미얀마 국민들은 이러한 땃마도의 실체를 간파하고 있다. 특히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 쿠데타 직후 거리로 대거 뛰쳐나왔다. 군부기업이 생산하는 물품 불매운동, 해킹을 통한 군부기업 관련 자료 공개, 친군부 인사들과 쿠데타 주도세력 일가족에 대해 수치심 주기 등 ‘사회적 처벌운동’도 이끌었다. 약자들이 취할 수 있었던 ‘무기’였다. 그러나 군이 평화적 시위를 유혈 진압하자 일부 청년들은 실제 무기를 들었다. 시민방위군(PDF)이 결성된 것이다. 주요 소수민족 무장조직들도 시민방위군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7일 임시정부격인 민족통합정부(NUG)는 쿠데타 군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얀마는 내전 상황으로 돌입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민들이 테러리스트 집단이 된 땃마도를 상대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면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혁명에 동참한 소수민족무장세력들은 지난 60년 동안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의 갈등을 부추겨 자신들의 존재감을 키워왔던 땃마도의 낡은 수법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11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와 모든 혁명 세력이 참여하고 있는 민족통합자문위원회(NUCC)가 함께 연방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어가고 있는데서 볼 수 있듯이, 혁명 세력들은 민주주의를 긍정하는 세력이면 출신 민족과 상관없이 모두 미얀마인이라는 ‘새로운 미얀마’(New Myanmar)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아가 NUG는 아웅산 수지와 NLD의 국제 신뢰도를 떨어뜨린 로힝자 박해 문제 관련해서도 거명조차 않던 로힝자를 호명하였고 UN의 로힝자 권리옹호 결정을 적극 지지하였다. 또한 정당, 시민사회단체, 노동자 조직, 소수민족무장단체 등 모든 반군부 정치사회세력을 포괄하는 NUCC가 ‘봄의 혁명’의 플랫폼 역할을 해내고 있다. NUCC는 독립 직후 연방국가 건설 합의해 이르렀던 팡롱회의(Panglong Conference)를 연상케한다.

2021년 2월 1일 일어난 쿠데타를 계기로 미얀마는 실패 국가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땃마도가 천명한 ‘규율민주주의’ 즉, 군부가 관리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유사 이래 최대규모의 도전이 아래로부터 전개되었다. Z세대부터 의료진, 교원, 공무원, 회사원, 60세 전후의 8888 항쟁 세대에 이르기까지 쿠테타 무력화를 목표로 투쟁에 나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인 Z세대는 2020년 11월 총선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Z세대는 2011년부터 군부 내 개혁파 테인세인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개방 시기에 성장기를 보내며 자유로운 정치·사회문화에 익숙해진 세대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도도한 민주주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군부를 묵과할 수 없었다.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1인 미디어의 역할도 해냈다. 민간인들을 향해 군부가 자행하는 진압 현장 장면과 국제사회를 향한 연대 호소문이 SNS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미얀마 국민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진영은 NUG를 인정하는데 지나치게 신중하고,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땃마도와 연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거기다가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아세안(ASEAN)은 자중지란 양상이다.

‘봄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미얀마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녹록치 않다. 반면 최근 군부는 반군부 활동을 한 대학생 7명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군 수뇌부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혁명에 동참하는 것이 혁명을 진압하는 것보다 이익이 된다고 계산하는 군 고위급 장교들의 이탈이 현실화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훨씬 더 강력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필요하다. 세 손가락 경례로 상징되는 태국청년들의 시민불복종운동을 승계한 미얀마 청년들의 저항과 희생에 더 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어야 한다.

아시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제2, 제3의 5·18이 재현되고 있다. 광주 5·18 정신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냈다. 그래서 미얀마를 비롯해 아시아의 청년 민주투사들은 광주를 찾고 희망을 발견한다. 광주 5·18 정신은 세계시민정신이 되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5·18 정신을 가슴에 품고 국경 넘어 미얀마를 향해 응답할 때이다.

박은홍(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자문)

※이번 호를 끝으로 3회 연재한 ‘버마부터 지금까지, 미얀마를 바라보다’ 기획을 끝맺습니다. 하루속히 미얀마의 민주화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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