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아야 했기에”
10년 동안 외치는 진실 규명
고개를 돌아보면 까만 벽걸이형 텔레비전이 보인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머리만 수면 위로 내놓은 채 있다. 옆에 있던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찬다. 그러면 나는 절박하고도 거리감 있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세월호 참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치과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세월호 참사 보도 뉴스를 보고 있는 기억이다. 2014년 4월 16일.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세월호 참사를 어수선하고도 무서운 분위기, 그러나 잊으면 안 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로 당시 상황을 회상한다.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가 침몰한 날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월호 유가족들이 겪은 고통과 투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인 문종택 감독과 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4기 위원장인 김환태 감독이 그날의 기억을 당시 찍었던 영상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회고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수학여행을 가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싣고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는 전라남도 진도 바다에서 침몰했다. 학생들을 포함하여 총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이는 떠났지만 왜 죽었는지 알아야 했기에” 진실 규명을 외쳤다. 그들이 바라는 건 보상이 아닌 사과와 진실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을 모르는 상태로 8년이 지나고 ‘이태원 참사’라는 이름만 다른 비극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실 규명을 외치고 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를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위한 조사는 늘 반쪽짜리였고 당시 해경과 선원들의 행동에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여전히 왜 세월호가 침몰됐는지 정확히 모른다. 침몰 원인으로 내력설과 외력설이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10년간 세월호 유가족들이 투쟁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10년간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카메라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우는 모습, 쓰러지는 모습, 악에 받힌 모습이 나온다.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세월호 피해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누군가와 싸우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런 모습들을 언론에 속수무책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찍힌 고통이기도 하다.
어린 가족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의 외침은 어떤 신파극보다 마음에 닿아 기어이 눈물이 나온다. 영상으로도 그들이 가진 고통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위를 막으면서 우는 경찰이 보였다. 이러한 고통을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대규모로 고통을 구경하는 꼴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10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도 “마침내 진실 규명이 될 거라는 안도감이 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된 날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2년 넘게 투쟁하여 얻은 첫 승리였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참사를 대통령 파면 사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이 없어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피해자 학생들을 제적시켰다. 단식투쟁을 하러 나갈 땐 한 커뮤니티 회원들이 그 앞에서 피자 파티를 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보상을 하면 돈 받아서 좋겠다는 소리도 들어본다. 빨갱이라고 하자, 한 세월호 유가족은 ‘매일 노란색만 입고 다니는데 어떻게 빨갱이냐. 난 노랭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바람처럼 흐른 10년. 이제는 알고 싶다. 진실이 무엇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