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억’ ‘민주주의’ 단어 자주 사용돼
헌법전문수록‧국가유공자 지정 등 문제 현재진행형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12‧3 계엄으로 5‧18 다시 주목”
<전대신문>이 5·18민중항쟁(5·18) 45주년을 맞아 오늘날 5·18이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알아보고자 <당신에게 5·18이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답변을 핵심 단어별로 분석했다. 답변은 ‘5‧18에 대한 생각, 인식, 바라는 점, 떠오르는 말’ 등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게 했다.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역사 △기억 △광주 △민주주의 △희생 △‘잊지’ ‘말아야’ 등이었다. 설문조사는 구글폼을 이용해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 진행했으며, 100명의 광주‧전남 시‧도민(시민)이 익명으로 답했다. 단어 분석은 응답 내용 중 명사, 동사, 형용사만 골라 빈도를 조사했고, 워드클라우드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기억해야 하는’ ‘잊힐까 두려운’ 역사
응답자들은 5‧18을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역사로 생각하기에 잊혀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역사’는 총 42번 쓰여 100개의 답변 내용 중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였다. 이와 함께 ‘기억’이 28번, ‘잊지’ ‘말아야’, ‘잊혀지는’ 등 ‘잊다’의 활용형이 23번 사용돼 높은 빈도를 보였다.
시민들은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이 만들어낸 저항의 역사’ 등의 답변처럼 5‧18을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역사로 생각한다. ‘점점 잊혀지고 있는 역사’ ‘청년 세대가 역사에 무관심’ 등의 답변을 통해 5‧18이 잊혀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잊힐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민들이 5‧18을 얼마나 중요한 역사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요하기에 그 의미를 지켜야 한다는 답변도 있었다. ‘음해하는 세력으로부터 지켜야 할 우리 역사’ ‘특혜 의혹이니 뭐니 해서 왜곡하려고 해서 마음이 아픔’ 등과 같은 답변에서 5‧18이 왜곡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잊지 않아야 할 역사. 아직도 진행 중인 역사. 반드시 헌법에 명시해야 할 소중한 민주화 역사.’라는 답변에서 ‘5‧18헌법수록’이 5‧18이 잊히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도 알 수 있다. 5‧18헌법수록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줄곧 요구되어온 사안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 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무산돼 여전히 헌법 전문에서는 5‧18을 찾을 수 없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최운용 고문은 “민주화 정권마다 광주에 내려와 5‧18헌법전문수록을 약속했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희생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의 시발점
다음으로 자주 등장한 단어는 ‘민주’(18번) ‘민주주의’(13번)다. ‘희생’도 9번 사용됐다. 이 단어들은 주로 ‘5‧18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내린 답변에서 쓰였다.
△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의 저항 △민주주의를 지킨 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사랑 △민주주의의 실현 △민주주의의 시발점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숭고한 걸음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만든 주요 운동, 6월 민주항쟁의 발판이 된 운동 △민주 사회의 근간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사회와 맞서 싸우신 분들이 비극을 겪었던 안타까운 사건 등 다수의 답변에서 시민들이 내린 5‧18에 대한 정의를 엿볼 수 있었다.
이 답변들은 5‧18이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싸운 역사, 결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당연한 역사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5‧18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낸 소중한 역사인 것이다.
광주의 자부심 vs 변질된 역사
5‧18은 광주의 아픈 역사임과 동시에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인해 5‧18 역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광주인의 자부심’ ‘가슴 아픈 기억과 동시에 광주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기억’ 등의 답변을 통해 시민들이 5‧18을 광주의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랑’과 ‘자부심’이라는 단어는 응답 중 각각 2번과 4번 활용됐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자축하거나 12‧3 계엄 당시 5‧18 역사가 시민들을 안심시켰다고 설명하는 답변도 볼 수 있었다.
5‧18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은 총 응답 100개 중 3개 있었다. 이는 △변질됨 △마음 아프지만 크게 와 닿지 않는 역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에 매몰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등이다. 5‧18을 중요한 역사로 생각하지 않거나 일부 논란들로 인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경우였다. ‘변질됨’이라는 답변에 이유는 함께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일부 5‧18 단체들의 내부 갈등 문제나 5‧18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를 비판한 것으로 추정된다.
5‧18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시민들에게 5‧18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5‧18 정신을 미래로 이어가야 하고 기억해야 하며, 5‧18헌법전문수록이나 국가유공자 전환처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응답자는 ‘5‧18은 항상 마음속에 품고가야 하는 양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계속해서 5‧18의 정신을 잊지 않고 기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변을 남겼다. 이는 계엄군에 의해 수천여명이 희생된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5‧18기념재단 공식 기록에 따르면 5‧18 희생자는 △당시 사망자 155명 △상이 후 사망자 110명 △행방불명자 81명 △부상자 2,461명 △연행구금부상자 1,145명 △구속‧연행자 1,447명 △재분류 및 기타 118명 등이다. 그러나 진실 규명되지 않은 피해자는 더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5‧18이 누군가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고,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역사였으면 해요’ △‘전남대학교의 과거이자 우리가 배우고 기억하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그 의미를 잊지 않아야 할 미래’ △‘평생 기억해야 할 것’ 등의 답변을 통해 시민들이 5‧18을 미래 세대까지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할 역사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5년이 지난 지금, 5‧18은 시민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역사다. 자주 접해온 익숙한 역사이기도 하며, 감사하고 소중한 역사다. 해결할 문제가 많은 사안이며, 미래에도 정신을 이어갈 대상이다. 시민들은 5‧18을 광주의 자랑이자 아픔이며,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