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맞는 5·18 의미 남달라
다시 오월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처음으로 맞는 오월이다. 지난해는 국민 모두에게 다사다난한 해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기쁜 소식에 이어 아닌 밤중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충격받은 해였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는 지난해 12월 7일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집을 읽으며 고민했던 문장들이다. 이 질문들은 1980년 5월 전남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됐던 박용준 열사의 마지막 일기를 읽으며 이렇게 바뀌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박용준 열사의 마지막 일기에는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고 적혀있다. 한강 작가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 뒤 완성된 소설의 이름은 <소년이 온다>이다.
12·3 비상계엄을 지나며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예시로 광주가 많이 언급됐다. 윤석열 파면 촉구 광장에서 5·18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기성(문헌정보·21)씨는 “5·18이 없었다면 12·3 비상계엄이 터졌을 때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했다”며 “헌법이 있었기에 윤석열 탄핵이 가능했던 것이고, 5·18이 있었기에 그 헌법이 가능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최운용 고문은 지난 7일 <전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계엄이 확대되었더라도 국민들은 맞서 싸웠을 것이다”며 그 이유로 “모두가 80년 광주를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탄핵 원동력이 된 5·18
특히 광주에 살았던 사람들은 비상계엄이라는 소식에 1980년 그날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다음날 5·18 민주광장에서 진행된 시국선언에서 만난 한 광주 시민은 “어쨌든 광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5·18 관련해서 보고 들은 게 많다”며 “뉴스로 국회 앞에 헬기나 탱크가 지나다니는 걸 보며 1980년 5월의 장면이 간접적 트라우마처럼 재현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5·18은 광주 시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광장에 나왔다”고 덧붙였다. 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도연(44)씨 또한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 오전 5시에 뉴스를 보며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며 “광주에 살지 않았다면 계엄이 무슨 의미인지 덜 생생하게 느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 5·18 알리는 계기
1980년 계엄과 44년 후 또 한 번의 계엄. 탄핵. 노벨문학상. 이 일련의 사건들은 사람들이 그날의 광주, 5·18에 대해 궁금해하게 만들었다. 지난 9일 <전대신문>이 기획한 좌담회에 참여한 김꽃비 독립기획자는 “이번 탄핵과 계엄을 거치며 광주가 항상 어딘가에서 호명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윤석열 탄핵 집회나 박근혜 탄핵 집회에 참여했을 때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항상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가 이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했다”며 “5·18의 아픔이 조금은 보상받는 듯 했다”고 말했다.
정미라 철학과 교수 또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은 굉장히 상징적이다”며 “세계적으로 5·18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5·18을 거의 폭동 취급했다”며 “끊임없이 투쟁하다가 노벨문학상으로 인해 5·18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를 구하기 위한 오월정신
그렇기에 광주는 이번 5·18 45주년의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번에 광주시는 5·18주간을 맞아 오월 정신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민주주의 대축제를 준비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국회의원 전원에 5·18 45주년 기념 행사에 초청장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 대학도 5·18 주간에 전남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건물 화장실을 개방하는 등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5·18이 현재의 우리를 구한 만큼 우리도 미래를 구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정 교수는 “민주주의는 항상 취약할 수 있다”며 “언제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5·18 기념주간에 여러 행사를 하며 오월정신을 알리는 것이다. 정 교수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5·18을 기억하고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로 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