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민 “여름 보양식으로도 제격”
오리고기 전파하는 과정에서 탄생
흔히 호남 지방은 ‘맛의 고장’으로 일컬어지곤 한다. 예로부터 농업, 임업, 수산업이 골고루 발달된 덕분에 식량자원이 풍족했던 호남 지역 특성상 음식문화 역시 자연스럽게 발전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일상 속 식탁은 대체로 정해진 음식을 반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기자 역시 서울에서 광주로 온 지 2년이 지났지만 바쁜 대학 생활 속 김치찌개와 같은 익숙한 식단에 머무르고 만다. 이에 광주·전남만의 음식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맛의 고장’ 남도의 식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예로부터 담백하고 구수한 맛으로 유명했던 오리탕은 광주의 토종 음식이다. 그러나 광주 사람이 아니라면 오리탕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기자 또한 올해 초에 오리탕이라는 음식을 처음 알게 됐다.
광주역 근처 유동오거리에는 오리탕 골목이 있다. 기자는 지난달 21일 골목에서 제일 오래 오리탕을 판매했던 ‘영미오리탕’을 찾았다. 가게에 들어서니 능숙하게 들깨 초장에 오리고기와 미나리를 찍어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보아하니 단골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남구에서 온 김영란(62)씨는 “담백한 맛 덕분에 오리탕집을 계속 찾는다”며 “더운 여름에 보양식으로도 제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오리탕을 맛보았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오리탕, 그 비결은?
오리탕 맛의 비결은 바로 들깨가루로 만든 육수다. 영미오리탕 김증지 사장은 “들깨를 갈아 체에 걸러내고 찌꺼기 없는 고운 들깨가루를 물에 풀어 오리를 넣고 푹 끓여내어 육수를 만든다”고 밝혔다. 들깨가루로 인해 처음 오리탕을 보는 순간부터 국물이 걸쭉해 보였다. 붉고 걸쭉한 국물 위로 미나리가 풍성하게 올라가 있었다.
예전에 오리를 구이로 먹었을 때는 비린내가 좀 느껴졌는데, 오리탕은 담백하고 구수했다. 각종 양념 및 들깨와 된장으로 오리고기의 잡내를 없애고, 푹 우려낸 붉고 걸쭉한 국물에는 오리 한 마리에서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맛들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었다.
또 오리탕하면 미나리도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미나리 역시 오리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잡아 주면서 탕 특유의 담백한 맛을 이끌어준다. 여기에 더해 미나리 특유의 향이 오리탕과 잘 어우러져 오리탕의 맛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
육수를 머금은 미나리를 한 젓가락 집어 들깨 버무린 초장 소스에 찍어 먹으니 아삭하면서도 담백한 육즙이 동시에 느껴졌다. 평소에 강한 향 때문에 미나리를 잘 안 먹곤 했는데 육수 특유의 담백한 맛과 잘 어우러져서 순식간에 미나리가 사라졌다. 두툼한 오리고기도 들깨 초장 소스에 찍어 먹고 국물이 바닥을 보일 때쯤 밥을 넣고 비벼 먹다 보니 어느새 뚝배기며 밥그릇이며 통째로 비어 버렸다.
오리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광주관광공사 홈페이지 정보와 전남일보 “걸쭉한 오리고기에 미나리 환상 궁합 ‘영양만점’” 기사에 따르면, 오리탕의 시초는 1970년대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주에서 오리농장을 운영하던 한 청년이 보급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 수요를 넓히기 위해 대만 수출은 물론 통조림 가공까지 온갖 노력을 하던 그는 광주의 식당가를 돌며 오리요리를 권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북구 유동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에게 자연산 청둥오리 요리법을 전해 듣고 미나리와 들깨가루를 넣어 끓여내는 오리탕을 개발하였다. 청년은 그 식당 주인에게 오리탕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오리를 반값으로 공급하기 시작했고 담백한 맛의 오리탕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에 유동 일대로 오리탕 전문점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의 거리가 형성되었다.
오리탕 전문점이 많아질 수 있었던 것은 원재료인 오리 생산지가 인접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970~80년대 당시 유동은 버스터미널과 광주역이 가까워 시민들과 외지인들의 이동량이 매우 많았다. 이와 같은 지리적 여건을 기반으로 유동 일대에만 30여 개의 오리탕 전문점이 생겨났다. 현재 유동오거리 주변에는 아직도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