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새로운 60년을 바라보며…지름길 아닌 바른길로 가야
개교 60주년의 해를 맞았다. 60주년을 맞은 우리 대학은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하려한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우리 대학을 위해 1회 졸업생 조복남 동문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우리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어떤 학교로 발전할 수 있는지, 그에 따라 학내 구성원들은 어떠한 역할들을 해낼 수 있는지. “1회 졸업생으로서 60주년을 맞는 모교를 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조 동문의 학교 사랑, 후배 사랑을 들어본다. //엮은이
전쟁통에 만들어진 학교, 전남대
1951년. 전쟁의 포성이 울려 퍼지던 때, 광주에 대학이 하나 생긴다. 정부의 지원, 향교에서 9억, 지역도민들이 6억 기부해 만들어진 학교. 전쟁통에 세워진 국립대학, 바로 전남대학교다.
이야기책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조 동문은 우리 대학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다. “전시 아니면 모시지 못했을 교수” 밑에서 조 동문은 그야말로 “신나게” 학교를 다녔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신나게 공부했다. 공부할 교실이 마땅치 않아 물류창고에서, 도시공장에서 수업을 들었다. 교재를 등사하거나 필사해 공부했지만 피곤을 몰랐다. 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1955년. 문리과 대학 학생 19명이 “다정한 졸업식”을 가졌다.
“당시 문리대에 40명이 넘는 학생이 입학했지만 졸업은 19명이서 했다. 그만큼 학교 다니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졸업하던 날 총장님이 한 명씩 안아주고 칭찬해줬다. 그 때의 졸업식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학교 사랑하기”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조 동문은 광주여고 국어 선생님이 된다. 처음 선생님이 되고 나서 주위 동료들에게 들었던 소리는 “호박꽃이 꽃이냐, 멸치가 고기냐, 전남대가 대학이냐”였다. 그 때 조 조 동문은 다짐했다.
“나는 ‘개혼(開婚)’이다. 내가 첫 주자다. 후배들의 길을 막지 않아야 한다. 비장한 각오로 임하자. 전남대의 명예를 드높이자.”
그것이 조 동문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었고 방식이었다. 40년이 넘는 교직 생활동안 한결같이 그렇게 살아왔다. 비장하게 수업준비를 하던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조 동문이 6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전남여고 교장이 됐다. 60세를 맞던 당시를 조 동문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바라보던 나에게 60세도 어제 오늘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모든 것을 조감하고 운영해야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항상 책임지겠다는 긴장으로 발걸음이 훨씬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우리 대학도 이제 60살이다. 60살이라는 책임감, 그동안 일궈왔던 역사에 대한 자부심 등을 모두 짊어지고 가려면 그 발걸음도 훨씬 무겁겠다. 조 동문의 발걸음이 그랬던 것처럼.
선배가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젊은 후배들이 모두 훌륭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힘을 다하여 돕는 일”이 선배의 “학교 사랑하기” 방식이다. 후배들은 “내 것이 좋은 거야, 내 모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학교 사랑하기” 방식이다.
“왕도는 없다”
학교는 ‘전대미인’(아름다운 창조인 육성)을, 60주년 기념 총동창회 준비 위원회는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내세웠다. “미래에 대한 비전, 세계화에 발맞춘 걸음”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대학과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조 동문은 값진 조언을 해줬다.
“왕도는 없다. 남이 대신 해주는 것도 없다. 내가 출발점이다. 내가 서있는 곳이 나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그 출발점에 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자.”
지방대학이라고, 잘나가는 대학이 아니라고 좌절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했다. 누구보다 더 뒤쳐졌다는 생각보다 내가 서있는 곳이 출발선이고 나는 지금 그 출발선에 서있다는 다짐은 ‘불만’을 ‘긍정’으로 바꾸는 힘이다.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는 더 낫다는 믿음은 ‘긍정’을 ‘비상’으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자신의 출발점을 야무지게 다지는 사람이 ‘아름다운 창조인’”이라고 말하는 조 동문은 ‘지름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면 된다”는 말보다 더 진화된 “하면 되는데 아무거나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뒤가 아름답지 못하고 어지러운 길은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른 목표를 향해 바른 방법으로 나아가 바르게 성취하면 걸어온 뒷날도 아름다울 수 있다. 처음이 늦은 것 같지만 결과가 아름다울 수 있다.”
내실 있는 학교로 성장하길
조 동문이 다니던 전남대보다 지금의 전남대는 건물도 많이 들어서 있다. 강의실도 많이 없었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상당한 크기의 대학으로 발전했다. 대학의 발전에 ‘격세지감’을 실감하고 있는 조 동문은 “외형을 가꾸기보다 내실을 탄탄히 하는 학교로 성장하길” 바라고 있었다. 조 동문이 생각하는 ‘내실 있는’ 학교는 바로 ‘믿음’이 있는 학교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 동문은 하나의 예를 들었다.
“두 사람이 칼싸움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긴다”고. 그리고 이어 말한다. “난 옥스퍼드 대학생이 아니거든.””
옥스퍼드는 ‘신사’를 길러내는 학교의 대명사다. 이처럼 “특성 있는 대학, 바른 심성과 능력을 선하게 쓸 수 있는 자질을 길러내는 대학, 누구든 신뢰할 수 있는 대학”으로 성장하는 것이 조 동문의 바람이다. 전문적인 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 가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이 되길 바란다. “전남대 학생이면 믿고 상종할 수 있다는 엄청난 ‘신뢰’를 키워내는 대학이 되어줬으면” 한다.
우리 대학의 교시는 ‘진리, 창조, 봉사’다. 진리와 창조, 그리고 봉사를 모아 차분하고 착실한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낫게, 현재의 출발점에서 한걸음 내딛어보자. “전쟁통에 정부와 도민, 유지가 후원해 만든 보람”이 있는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 동문이 말하는 “자기 자리에서의 비상”이 필요할 것 같다. 학교의 비상은 곧 개인의 비상으로 이어지기에. 선배들은 믿고 있다.
“거목으로 커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