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신작 오컬트·포크호러 장르
손끝으로 감각하는 가치…책의 물성이 중요
“소설은 쉽게, 작가로서는 쉽지 않게 읽히길”

<전대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 시대 여성작가를 만나다’ 기획을 이어간다. 다섯 번째 여성작가는 조예은 소설가다.
조 작가는 지난 2016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그의 작품에는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칵테일, 러브, 좀비> △<스노볼 드라이브> △<트로피컬 나이트> △<만조를 기다리며>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꿰맨 눈의 마을> 등이 있다. 올해에는 △<입속 지느러미> △<적산가옥의 유령> △<초승달 엔딩 클럽>까지 총 세 권을 냈다. 
지난달 6일 서울 머씨커피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전업 작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엄청난 결심이나 오랜 선택이 이끈 길도 아니었다. “계속하다 보니 지금도 하고 있다. 정신 차려보니 줄곧 하고 있는 것 같다.” 계속 쓰도록 이끈 것은 ‘재미’였다. 재미는 그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다. 조 작가는 “글을 쓰는 이유도 재밌어서이고, 늘 지금 제일 재밌는 것을 쓴다”며 “쓰면서 스스로 재밌지 않으면 그냥 안 써진다”고 말했다.

대학교 3학년 교양 수업 과제로 쓰게 된 좀비 소재의 단편 소설이 계기였다. 이후 공모전에도 작품을 내고, 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조 작가는 “기존 전공이었던 ‘금속공예’도 예술 계통이라 창작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며 “분야가 달라 망설였지만 크고작은 공모전에 당선되며 거리감이 좁혀졌다”고 말했다. 

 

유령·물귀신보다 사람과 현실이 무서워

조예은 작가가 지난달 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예은 작가가 지난달 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가 쓰는 이야기 중 유일한 한 가지 얇은 실 같은 걸 뽑아보자면 저는 변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고여있지 않고, 무언가 변화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여기에는 현실에서 무언가가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변화의 조짐, 그 직전과 직후를 그려내는 것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급변하는 세계관도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조 작가의 작품에는 유령, 살인마, 물귀신 등 심상치 않은 존재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는 한 번도 이러한 존재들이 아주 무섭다고 느낀 적 없다. 그는 “사람과 현실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며 “초자연적인 존재와 다르게 나에게 당장 직접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상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찾아내기 힘든 아름다움을 가상의 세계에서 얼마든지 직조할 수 있어서다. 조 작가는 “도망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 기후 위기 같은 거대한 재앙이 무서운 이유는 개인이 소리 낸다고 바뀌기 힘들기 때문이다”며 “내 안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적 같은 희망을 바라며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이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인물은 이야기 뒤에 따라온다. 그는 “쓰기 시작할 때 인물 설정을 세세하게 하는 편은 아니다”며 “이런 이야기를 써야지 하면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주인공들이 이야기 다음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쓰면서는 인물의 속마음, 내면 묘사에 최선을 다한다. 작가는 “그 인물이 소설 안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도록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다.

 

다작의 원동력은 재미와 마감

인터뷰 전날 단편소설 마감을 했다는 조 작가는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다”며 “새 장편소설 하나도 작업하는 중이다”고 전했다. 2019년부터 꾸준히 작품을 낸 그는 올해에도 무려 세 권의 책을 펴냈다.

그가 현재 쓰고 있는 장편소설은 오컬트, 포크호러 장르다. 신작에 대해 그는 “장르성 짙은 장편을 쓰고 있다”며 “운명에 저항하는 세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언제쯤 볼 수 있냐 묻자 “올해 열심히 작업하면 내년 초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말했다.

다작의 원동력을 묻자 그는 재미와 마감 두 가지를 꼽았다. 조 작가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지만 사실 쓸 내용이 정해지면 쓰는 것 자체는 빨리 쓴다”며 “초고를 쓰는 시간과 퇴고하는 시간이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글 쓰는 것이 지금껏 했던 다른 여러 전공, 이런저런 것들에 비해 가장 재밌고 안 질린다”며 “쓸 수 있을 때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쓴다”고 말했다.

글 쓰는 데에 체계적인 루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할 일들을 하고 운동을 가고, 원고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독서하며 몰입도를 키운다. 조 작가는 “별로 특이한 것은 없지만 간단한 루틴이라도 지키면 하루가 순탄하게 작업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호흡이 긴 장편과 단편 작업을 함께 하면 흐름이 끊기지 않냐는 질문에는 “보통 빨리 단편을 끝내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간다”며 “피치 못하게 같이 해야 할 때는 하루에 쓸 글자 수를 정해놓는 방식으로 퀘스트 깨듯 하면 수월하다”고 말했다. “쓰기 싫은 날은 안 쓰는 날도 있다”며 “그게 프리랜서의 장점”이라고도 말했다.

책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희곡집 △시집 등 가리지 않고 읽고 콘텐츠를 보는 조 작가. 그는 최근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하승민 작가의 <멜라닌>과 희곡집 <필로우맨>을 꼽았다. 이어 “희곡은 공간의 제한이 있지 않나”며 “제한된 공간 안에서 굴곡이 큰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 되게 재밌고 소설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유일한 목표, 가늘고 길게 계속 쓰는 것

종이는 손에 잡힌다. 손으로 책을 쥐고 쥔 채로 종이를 넘기며 읽는다. 손끝으로 감각하는 것. 종이가 갖는 물성과 실재감은 영상과 같은 무형의 콘텐츠가 산재하는 시대에서 더 중요해진다. 조 작가는 “드라마를 보더라도 요약본을 보면 기존에도 무형의 것인데 더 압축된 것을 보고 간접 체험을 하는 경우가 갈수록 보편적이게 된다”며 “한참 보고 나면 몰입해서 봐도 붕 떠 있는, 모호한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실재감은 중요하다.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스마트폰이 보편적이지 않았지만 요즘 세대들은 분명 다를 것 같다”며 “종이책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지만 죽고 난 후까지 멀리 봤을 때 계속될까 하는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책의 물성을 강조했다. 이어 “물성으로 존재하는 이상 물건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내 책도 최대한 아름답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디로,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조 작가는 “목표가 있냐 거나 하는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멋쩍다”며 “어쩐지 도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삶의 태도가 그렇지 않다”고 운을 띄웠다. 현실에만 집중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칭한 그는 “유일한 목표라면 가늘고 길게 계속 쓰는 것”이라 답했다. 이어 “커다란 흐름 같은 건 모르겠다”며 “그때그때 쓰고 있는 그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종잡을 수 없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는 “소설은 쉽게, 작가로서는 쉽지 않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예은의 이야기들은 단숨에 독자를 마지막 문장으로 이끈다. 오싹한가 싶다가도 읽고 나면 마음이 뭉클하다. 비극은 비극이 아니다. 물귀신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그곳에 낭만이 있다. 조 작가는 독자들을 향해 말했다. “오래 쓸게요. 이상한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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