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어때? 먹을 만해? 넌 어떻게 나보다 더 잘 먹네. 난 너무 매워서 다 못 먹겠다. 청양고추? 캡사이신? 글쎄, 뭘 넣은 걸까. 근데 네 어머님 살던 곳엔 이것보다 더 매운 고추가 있을걸. 스코빌 지수 높은 그런 거 있잖아. 작은 고추, 쥐똥만 한 거. 그래서 네가 매운 걸 잘 먹을지도.

네 엄마 나라가 어디였지. 너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한국인. 국적은 한국이지만 모국은 한국이 아니고, 2개 국어가 가능한 녀석. 나보다 매운 걸 더 잘 먹던 그 녀석은 내 군대 후임이었다. 내 기억 속에 녀석은 영원한 일병이었는데 얼마 전 전역을 해서 나를 찾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찾았다. 분명히 할 말이 있었는데, 문자나 전화로 해도 될 말이었으면 이렇게 얼굴을 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일로는. 그 녀석에게 하려던 말은, 청양고추인지 캡사이신인지 모를 비밀의 매운 양념과 함께 내 혀의 통각을 담당하는 어느 부분에서 뒹굴고 있었다. 혹시 그 말이 그 녀석을 아프게 할까 봐 아니면 내가 아플까 봐 몰라서 뱉지 못했나.

밖엔 여느 때보다 이르게 흰 눈이 내렸는데 내 앞에 앉은 녀석은 까만 피부로, 입에 빨간 양념을 묻히며 갈비를 뜯었다. 흰 눈은 내려서 점점 쌓였고, 그 녀석의 밥은 점점 줄었다. 나는 양념이 묻지 않은 깨끗한 내 밥을 덜어 그 녀석에게 주었다.

먹고 있어.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이모 여기 쿨피스 하나만 더 주세요.

무음 모드의 핸드폰에 찍힌 건, 한 시간 간격의 부재중 전화 두 통과 문자 한 통. 첫 수상 안내 문자를 받은 이후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네 통의 전화를 거절했고, 다섯 번의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지만 발신자를 알 수 있었다. 수상 발표 며칠 전, 확인을 위해 내가 먼저 걸었던 전화에 통화 상대는 마치 자신의 일인 듯 기쁜 목소리로 내 입상을 축하했다. 좋은 평가를 받았고 수상은 어디서 이루어지며 상금을 받을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자로 다시 전달하겠다며 수상 소감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통화 끝엔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글을 쓰고 나서 처음으로 입상한 사실 때문일까. 작가라는 단어는 아직 부담스러웠다. 그 뒤로 이어졌던 그녀의 연락은 무시했다. 가장 마지막 문자는 좀 달랐다. 곧 공모전 수상 발표인데, 이번 주말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으면 수상이 취소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상사는 왜 수상자에게 연락을 받지 못하냐며 그녀를 나무랐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죄송하다고 연신 굽신거렸을까. 아마도. 소정 씨 수상 소감은 아직이야?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게 아니라 연락을 못 했어? 아니면 아직 안 한 거야? 연락은 했는데……. 근데? 전화를 안 받아서……. 그럼 문자를 해야지. 문자도 했는데……. 번호 잘 확인한 거 맞아? 잘못 보낸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게 아니라 그게 어려운 건가? 연락이 안 되면 찾아가는 시늉이라도 하는 그런 열정이 필요한 거야,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응? 죄송합니다……. 이런 내용일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쌓일 때마다 그녀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머지않아 잊었다. 그녀는 상사를 욕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를.

그 문제의 수상 소감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파일을 아예 지우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노트북을 덮어두고 켜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 녀석은 자리에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계산하려고 하니 이미 계산이 되어있었고, 포스기 뒤편 창문으로 그 녀석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하얗게 웃을까 싶었다.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하얀 웃음에서 나는 여전히 그 녀석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녀석의 첫 전역자였다. 내 군 생활은 평범했다. 누군가와 특별히 친하거나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혼자 지냈다. 혼자 있을 때 대게는 책을 읽거나 짧은 글을 썼다. 전역을 앞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소설을 쓰는 데 집중했다. 전역을 백일 정도 남겨 놓고 내 소대에 그 녀석이 전입을 왔다. 진한 쌍꺼풀과 짧은 코, 까만 피부, 하얀 손바닥이 슬쩍 보이게 경례하는 이상한 녀석. 그게 나와 그 녀석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의 첫 대화는 그 녀석의 실무 첫 근무에서 이뤄졌다. 대충 이런 얘기.

나 몇 살 같아. 밖에서 뭐했을 것 같은데? 솔직하게. 흠, 내가 그렇게 생겼나? 아닌데, 다음 근무 때까지 알아 와. 넌 몇 살이야? 내가 형이네? 형 해봐. 난 어차피 곧 집 가잖아. 어디서 왔냐? 뭐야 그럼 군대 올 필요 없는 거 아니야? 미친놈. 근데 왜 왔어? 왜, 말하기 싫어? 싫음 말고, 대신 암기사항 검사로 넘어간다? 다 외웠지? 그래, 이런 건 원래 선임한테 다 말하는 거야. 여기 있을 땐 네 선후임들이 가족이야. 말해봐. 음……. 그래……. 앞으로 다른 애들이 물어보면 그런 얘기 하지 말고, 멋있어서 왔다거나 아니면 뭐 반은 한국 사람이니까 애국심, 뭐 그런 걸로 잘 얘기해. 무슨 말인지 알지? 나도 어디 가서 말 안 할게. 진짜야. 근데 그럼 말이야 넌 휴가 나가면 어디로 가냐? 그 아빤가 아저씨는 너 군대 간 건 알아? 음……. 야, 다른 얘기하자 우울하다. 근데 너 한국말 진짜 잘하네. 한국엔 언제 온 거야. 너 얼굴 안 보고 목소리만 들으면 그냥 한국사람 같아. 한국말은? 그게 책 많이 읽는다고 배워지는 건가? 재능인가? 그래서 뭐하려고 전역하면. 작가? 너 글도 써? 야, 나 보여줘. 나도 글 쓸 거야 나가면. 나도 보여 줄게. 야, 혹시 알아? 나중에 우리가 유명해질지. 이따 철수하고 나랑 상황실 가서 복사 좀 한다고 하자. 나랑 통하는 게 좀 있는데 너? 무슨 내용인데? 들어나 보자.

그 녀석의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대게 이주 노동자, 특히 여성 이주 노동자, 그들의 자식이나 남편. 가끔 사람이 아닌 것들도 있었다. 나와 그 녀석은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앞으로 쓸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또 절대 쓰지 않을 이야기도. 어쩌면 그 녀석이나 그 녀석의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고 해도 꽤 괜찮을 것 같았다.

여성 이주 노동자가 여성 이주 노동자가 되기 전 그냥 여성 노동자일 때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한 생명을 낳은 이야기. 이제 막 젖을 뗀 아기를 두고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이야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위해 일을 두 배로 했고, 아이의 유치가 막 빠지기 시작했을 때 일터에서 한국 남자를 만난 이야기. 마지막 송곳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기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그 남자를 따라 낯선 한국으로 온 이야기. 다시 혼자가 된 이야기. 그리고…….

어때? 벌써 할 얘기가 많잖아. 하긴 네가 네 이야기에 쓸 생각을 안 해봤을까.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대학이나 뭐 학원도 있고. 네가 쓴 글 어디 내봤어? 공모전 같은 거 있잖아. 뭔지 알아? 그래? 한 번도 된 적이 없어? 그치, 그게 쉬운 건 아니지. 야, 그거 지우지 마.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 같아. 이 선임의 촉이야. 있잖아, 난 그런 게 좋아. 저 도시의 네온사인이나 전광판보다 먼 산골 마을에 듬성듬성 켜진 가로등 같은 거. 거기에 그 가로등 하나가 없으면 그 마을 사람들이 오갈 수가 없잖아. 소중한 거지. 관리도 안 하고 정비도 안 해서 옆에 녀석들은 꺼져가거나, 이미 고장이 나서 식은 지 오랜데. 그 한두 개가 버텨줘서 마을 사람들이 밤길을 다녀. 네 소설도 그래. 눈부시게 밝지 않아도 빛을 내기를 소망하고, 읽히지 않는 것보다 잊히는 걸 두려워하자. 그리고 계속 쓰자. 난 네 소설이 좋아. 재밌어.

그때 초소에서 못한 말. 애리조나 사막지대의 인디언. 호피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에. 들소가 쓰러지고, 땅이 갈라져도. 그 자리에서 계속.

그 녀석의 소설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내 엄마는 이주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다. 그들은 더울 땐 땀띠가 나고, 추울 땐 동상에 걸리는 일터에서 일했다. 엄마는 내가 그녀의 일터에 찾아오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의 땀 냄새가 좋았고, 퇴근 전 그들의 표정이 좋았다. 나는 그들의 서툰 한국말이 재밌었고, 나에게 쥐어주는 때 묻은 천원이 좋았다. 탈탈거리는 선풍기의 바람도 좋았고, 작업장 끄트머리에 우두커니 혼자 서있는 난로도 좋았다. 퇴근은 도시에서 했지만,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듬성듬성 가로등이 길을 밝혔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주 살짝 아래로 기운 내리막길의 끝에 있었는데, 마을에 들어선 후 우리 집으로 들어가려면 또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공장 출근 전까지 시간이 좀 있었다. 식당 믹스커피를 뽑을까 했으나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라도 사 먹이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카카오톡 선물함을 켜서 기프티콘이 남아있는지 확인했다. 대게는 사용하지 못하고 환불 처리될 것들이었다.

나를 앞서가는 녀석의 발자국은 하얬다. 그 녀석은 내리는 눈에 감사할 줄 알았고, 현미경을 쓰지 않고도 각진 눈 결정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커피를 시켜놓고 녀석은 실컷 떠들었다. 매운 갈비의 양념에 대해서. 녀석이 살던 나라의 겨울에 대해서. 내가 전역하고 그 해 겨울에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었는지. 그걸 치우면서 눈이 처음으로 싫어졌다고. 하지만 이제 보니 눈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나는 고개만 끄덕이면서 어떤 표정의 변화 없이 창밖으로 천천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첫눈이 내릴 때 하던 것을 멈추고 하늘을 멍하니 보는 여느 사람들처럼. 그러다 그 녀석이 그 얘길 했다.

그거? 아 네 소설. 하, 그게 참.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전역 선물인데, 몇 달 전에 서울에 물난리 났을 때 우리 집도 잠겨서 다 못쓰게 됐어. 내 컴퓨터도. 네 원고도 전부. 근데 그건 왜? 아, 전역했으니까 이제 글 본격적으로 써보려고? 좋은 생각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나 전역 날에 준 소설은 다른 거에 비하면 좀 별로더라.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아니, 별로라기보다 워낙 다른 게 좋은 게 많아서 그래. 애써 기억해 내려고 고생하지 말고, 다른 것들로 도전해 봐. 좋은 거 많잖아. 아니면 나 좀 주던가.

맘에도 없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처럼 지껄이고 말았다. 그 녀석은 어쩌면 전역 선물로 나에게 주었던 그 소설을 되돌려 받으려고 나를 찾아왔을지 모른다. 새파란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말았다. 해야 할 말은 여전히 숨겨둔 채로 말의 순서를 거스르며 또 숨고 말았다.

실망한 거 아니지? 너 그런 놈 아니잖아. 야, 우리의 추억으로 묻어 두자. 그건 그렇고, 나 곧 공장 출근해 봐야 해. 터미널까지 마중 나가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다음엔 내가 거기로 갈게. 나가자. 택시 잡아줄게.

그 녀석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날이 추워서 다들 주머니에 손을 푹 꽂아 넣고 다리를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에 출근하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했는데, 집에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에게 사줄 밥값을 아꼈으니 그 돈으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겉옷도 벗지 않고 책장으로 향했다. 현관문만 열면 책상과 책장이 바로 옆에 있었다. 여기저기 뒤섞인 책과 원고들 사이로, 그 녀석의 원고를 찾아냈다. 원고지가 아닌 국방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은 소설. 제목은 「그 이야기」.

*

9월.

나는 다른 또래에 비해 군대를 늦게 갔고, 복학 또한 늦어졌다. 본가에서 먼 곳으로 통학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1년 동안은 야간에 편의점과 술집 아르바이트를 했다. 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고 나서는 공사현장에 2년 가까이 있었다. 전역을 하고 나서는 산업단지 근처 태양광 공장에 다녔다. 편의점과 술집에서는 취객과 진상에게 치였고, 공사현장에서는 관리자와 기공들에게 치였다. 공장에서는 사수와 목표 생산량에 치였다. 그렇게 치이면서 나 스스로는 이정도면 인내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왔다.

엄마, 난 MZ 세대랑은 달라. 걔들은 뭐랄까……. 악이 없어. 악이.

그런 와중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 계획이 틀어졌을 때 바로잡지 못하는 것. 다른 길을 모색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었다. 계획은 예기치 못하게 틀어졌고, 헤매게 될 길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계획이 틀어졌다.

하나, 학교 건물로 들어온 헌혈 버스에서 헌혈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거부당했다. 문진표에는 최근 2년 동안 거주했던 지역에 대한 칸이 있었다. 문진표의 항목에는 강화도가 있었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곳.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강화도에 체크했다. 문진표 작성을 끝내고, 나는 내 차례가 될 동안 앉아서 이어폰을 끼고 눈을 좀 붙이려고 했다. 피를 뽑으려면 컨디션이 좋아야 하니까. 잠에 막 들려고 할 때 누군가 내 손등을 툭툭치며 깨웠다. 나는 내 차례가 된 줄 알고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저기요. 죄송한데 헌혈을 하실 수가 없으세요. 왜요? 혹시 강화도에 거주하셨어요? 그런데요? 거긴 말라리아모기 출현 지역이라 안 되세요…….

“말라리아모기가 왜요?”라고 묻지 않았다. 말라리아모기가 좋은 모기가 아닌 것은 알았으니까. 그 모기에 대해 처음 들었던 건 내가 이등병일 때였다. 간부들이 말하길, 이곳엔 말라리아모기가 있다고 했다. 그 모기에 물리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간부들이 주는 약과 해독제를 받아먹었다. 흡연장에서 선임들은 그 약과 해독제는 너무 독해서 발기부전이나 탈모를 유발한다고 했다. 또 그 약을 먹고 중국발 바이러스의 백신을 맞게 되면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몸에 좋을 약이면 약이지 약을 먹고 해독제를 먹어야 하는 것은 다 그 약의 독성 때문이라고 했다. 간부들은 절대 그런 약이 아니고 구충제와 비슷한 것이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선임들은 그 약을 먹는 척하고 손에 쥐고 있다가 몰래 버렸다. 그 약을 먹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선택은 본인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선임들이 일단 약을 받은 이유는, 약을 먹지 않고 말라리아모기에 물리면 치료에 대한 책임이 군에는 없다고 간부들이 말해서였다. 처음엔 말라리아모기가 무서워서 약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약을 먹지 않은 선임들 중에 말라리아모기에 물려 아픈 사람이 없었다. 누가 물렸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내 밑으로 후임이 들어왔을 때 나도 모르게 후임들에게 그 약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발기부전과 탈모에 대해서. 그리고 백신 부작용에 대해서. 그리고 나도 선임들이 그랬던 것처럼 약을 버리기 시작했다.

“헌혈을 하실 수가 없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발기부전과 탈모, 백신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다만 궁금했다. 내가 어떤 구체적인 이유로 헌혈을 받을 수 없는지. 아직 내 혈관에 돌아다닐 그 약의 정체 모를 성분 때문에? 아니면 그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모기가 나도 모르게 나를 물었을지도 모르니까? 묻고 싶었다. 약 때문인가요 아니면 그 전설의 모기 때문인가요. 결론적으로 제 피가 오염되었을까요? 강화도에 겨우 2년 살았다는 이유로? 아닌데,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난 건강한데.

헌혈 버스 밖으로 버스 입구를 따라 헌혈을 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왜인지 버스 안의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수군대지는 않았지만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발기부전인가 봐……, 탈모인가 봐……. 젊게 보이는데 딱하네…….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서 내가 왜 헌혈을 받을 수 없는지 묻지 않고 헌혈 버스에서 내렸다.

내가 헌혈을 받아야 하는 이유. 곧 있으면 학생 예비군에 가야 할 날인데, 헌혈증이 있어야 조기퇴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기퇴소를 해야 공장에 늦지 않게 출근할 수 있으니까.

계획이 틀어지기 전, 그러니까 오늘 아침. 아침엔 분명히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 나선 뒤, 아침으로 먹을 삼각 김밥을 사러 가는 길에 공장 반장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격일로 저녁에 출근하라고.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는 내 사정을 딱하게 생각했을까. 평소 말이 없고 일 이외의 불필요한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고마웠다. 야간 공장은 주간보다는 편했다. 가동하는 기계가 많지 않아서 내부가 그나마 조용했다. 대개 주간은 한국인들이, 야간은 외국인들이 출근했다. 그들은 한국말이 서투르고 기계를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단순 조립 라인이나 포장 라인에 들어갔는데, 그들끼리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대개는 주간 작업을 위한 준비와 청소를 주된 업무로 했다.

지각이나 결근을 최소화해야 했다. 더 이상의 편애는 나도 불편했고, 공장 사람들 보기도 부끄러웠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편하게 일하면서도 야간수당을 받았으니까. 외국인들은 받지 못하는.

남들에게 조기퇴소는 희망사항일지 몰라도 나에게 조기퇴소는 필수사항이었다.

둘, 삼 주 전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집이 잠겼다. 정확히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엄마 혼자 사는 본집이. 불행 중 다행으로 엄마는 지난 몇 달 동안 아는 언니를 따라 평택에서 먹고 자며 일을 하고 있었다. 추석엔 본집에 올라가서 젖어 가라앉은 것들을 치워야 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내 원고였다. 낮은 서랍장에 이리저리 넣어놓은 원고가 빗물에 잠기지 않길 바랐다. 두 달여 남은 공모전에 낼 원고도 거기에 있었다. 원고가 젖었다면 새로 소설을 써야 할 터였다. 물론 새로운 소설을 쓰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이전에 썼던 것들을 찾으려고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쓰지 않을 것들과 써야 할 것들에 대한 메모였다. 쓰지 않을 것들과 써야 할 것들은 많았지만, 첫 문장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강의 시간엔 괜찮은 문장이 떠올라서 책 한 귀퉁이에 적었다. 문장을 곱씹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블라인드가 얇아 창밖 멀리 구름과 산이 비쳤다. 비친 구름이 그림처럼 멈춰있었다. 블라인드의 구름 그림인지 그림 같은 창밖의 구름인지 헷갈렸다. 강의가 끝나고 블라인드 가까이에 갔을 땐 구름이 지나간 뒤였다.

셋, 내 첫 노트북이 먹통이 되었다. 수업자료, 양식, 짧은 이야기들 모두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워낙 구식 노트북이라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노트북 값보다 더 나오진 않을까 걱정했다.

또 비가 올 것 같았다. 하늘이 흐렸고, 강의실에 모기가 느리고 낮게 날았다.

*

추석 연휴인데도 동네는 조용했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사는 마을 어귀에나 추석 느낌이 났다. 이 동네와 같이 늙어간 사람들이 사는 마을 뒤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적이 드물었다. 그들은 추석이라고 찾아올 자식이 없었거나, 있던 자식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그들을 찾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또 저 살기가 바빠 이웃 간에 왕래도 드물었다. 그들은 혼자 나가서 혼자 들어왔고, 혼자 밥을 먹었다.

내리막길의 시작에 있는 몇 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마을이 폭우로 피해를 입었다. 집이 잠겼거나 담이 무너졌거나, 자전거와 수레가 물에 쓸려 사라졌다. 무너진 담 아래로 낙엽 더미와 폐비닐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로는 해가 잘 들지 않았다. 폭우가 지나간 지 오랜데 아직 물기가 남아있었다. 현관문은 열려있었다. 엄마에게 전화해 보니 집주인과 빌라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차오른 물을 퍼 날랐다고 했다. 벽과 천장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모양의 곰팡이가 돋아있던 것과 그릇이 제 맘대로 뒤섞여 있는 것, 옷장과 서랍장이 모두 열려있는 것을 빼면 집은 나름대로 집의 모양을 갖추고는 있었다.

서랍장엔 물기가 남아있었다. 서랍장에 쌓여 있어야 할 원고는 제자리에 없었다. 원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 적이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그렇게 쌓여간 원고들은 처음엔 차곡차곡 포개졌다가, 점점 구겨졌다가 나중엔 순서를 신경 쓰지 않게 되어서 뒤섞였다.

아마 우리 집을 치워준 사람들은 그 서랍장의 종이가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본 적이 없는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에 젖기 전에도. 물에 젖은 후에도.

공모전에 낼 새 소설이 필요했다. 물에 젖지 않은 것으로. 젖었더라도 소설이라고 알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 서랍장의 종이들과는 다른 것으로.

컴퓨터는 굳이 전원 버튼을 누르고 5분 넘게 기다리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망가져 있었다. 모니터 스크린 사이에 습기가 서려 있었다. 본체 틈으로 보이는 냉각팬과 메인보드 사이에 낙엽과 흙더미가 엉켜있었다. 메모리카드에 저장된 한글 파일들도 어디론가 이동하지 못한 소설들이었다. 머릿속에, 물에 잠긴 소설들의 제목과 아꼈던 문장들이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낙엽과 흙더미처럼 한데 섞여 분리하기 어려웠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 바로잡지 못하는 것. 다른 길을 모색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었다. 계획은 예기치 못하게 틀어졌고, 헤매게 될 길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계획이 틀어졌다.

이번 공모전은 마지막 공모전이었다. 이번에도 내 소설들이 어디론가 가지 못한다면 이젠 정말 그것들을 놓아줘야 할 때였다. 걸작은 아니더라도 온몸을 부대끼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너덜너덜거리는 소설이 필요했다.

망가진 컴퓨터와 텅 빈 서랍 앞에서 담배를 연달아 태웠다. 거친 한숨으로 길게 내뱉은 연기가 줄을 지어 창틈으로 세어 나갔다. 입이 마르고 목이 따가워지고 나서야 바닥의 담뱃재와 꽁초를 발견했다. 아무리 물에 잠겼던 집이었어도 한 달 뒤에 돌아올 엄마가 이 꼴을 본다면 등짝을 때릴 것이 분명했다. 빗자루가 있을 법한 신발장을 열어젖혔을 때, 맨 위 칸에 그것이 있었다. 유일하게 이 집에서 물에 젖지 않은 종이 뭉치들 사이로, 전역하던 날 후임들이 써줬던 편지들 사이로, 손바닥만 한 국방 노트엔 그 녀석이 전역 선물로 줬던 그 녀석의 소설이 있었다.

고마워. 꼭 읽어볼게. 이걸 언제 다 썼냐. 근데 제목이 없네? 내가 나중에 읽어보고 제목 꼭 붙여줄게.

그 녀석의 소설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신발장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 녀석의 소설은 아직 읽지 못한 편지들과 함께, 전역하고 나서의 허무감과 삼교대 공장 출근의 피곤함에 묻혀 잊혀갔다. 그 녀석이 몇 기였지. 피부가 까만 그 녀석. 나는 종이 상자에서 그 국방 노트를 꺼내 들었다. 제목도 없고, 내용도 모르는 것을.

대충 이런 이야기.

도망가자. 여동생의 손을 잡아 이끈다. 우린 서로를 사랑하니까. 내 엄마와 네 아빠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의 따뜻한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자, 멀리로.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는 우리만 있어도 행복하니까. 그곳에서 우리 둘 만을 위한 오두막을 짓고, 새콤한 과일을 따고, 모닥불 앞에서 내 어깨를 내어줄게. 가자, 내가 태어난 곳으로. 우릴 혐오할 시선이 없는 곳으로. 너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

나는 젖을 빨리 뗐다고 했다. 엄마의 젖이 일찍 말라버려서. 내가 젖을 떼면서, 세상과 얽힌 아빠의 연이 같이 떨어져 나갔다. 엄마는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일터로 나갔다.

내 나라에서는 젖을 빨리 뗀 아이는 빨리 철이 든다고 했다. 내가 뗀 젖인지, 젖이 떨어진 건지.

어린 나는 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하루는 엄마가 집에 한국 남자를 데려왔다. 엄마가 일하는 곳의 사장님이라고.

아들이 딸처럼 예쁘게 생겼다. 엄마를 닮았다.

그 남자는 가끔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어떤 날엔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어떤 날엔 엄마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우리 집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집에 티브이가 생겼고, 냉장고가 생겼다.

아들, 그 아저씨가 아빠가 된다면 어떨 것 같아? 그 아저씨는 엄마한테 정말 친절해. 너도 빨리 친해지면 좋을 텐데. 아저씨는 돈도 많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랑 하나도 닮지 않았으니까. 눈, 코, 입뿐만 아니라 정말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피부색이며 말이며 모든 것이. 나는 그 남자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싫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하루는 엄마가 새벽에 나를 깨우더니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가면 그 남자를 아빠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여동생이 생긴다고 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아주 예쁜 아이라고. 아주 독한 감기에 걸렸는데 잘 보살펴 줘야 한다고.

아마 그 남자처럼, 그 남자의 딸도 나랑 전혀 닮지 않았을 텐데. 눈, 코, 입도. 피부색도, 말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한국은 하얬다. 커다란 건물의 머리 위로 흰 눈이 쌓여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쯤, 그 건물들에 박힌 수많은 유리 창문을 보았다. 한국의 공기는 차고 건조해서 처음으로 입김이라는 것을 보았다. 입을 천천히 열고 숨을 느리게 내뱉을수록 입김이 커졌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추위였다. 낯선 추위와 커다란 활주로에 움츠러들어 짐 가방을 더 끌어안았다.

공항엔 그 남자가 마중 나와 있었다. 말끔한 정장과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회색 체크 코트, 번쩍이는 구두의 그 남자. 그 남자 뒤로 여자아이 하나가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아, 아마 나보다 한 살 어릴 여동생.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그 남자의 차 뒷자석에 나란히 앉았다. 우린 나란히 앉았지만 창가 쪽에 최대한 붙어 있었다. 팔을 쭉 뻗어야 겨우 상대의 어깨가 닿을 거리. 어른 한 사람이 사이에 앉기에도 충분한 거리. 우리는 생김새도 다르고 쓰는 말도 달랐지만, 남매가 되겠지. 그 아이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 아이의 시선이 온통 내 까만 피부와 짧은 코로 향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홱 돌려 그 아일 쳐다보면 그 아이는 내 눈을 피하고 딴청을 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나도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높은 건물, 많은 차, 하얀 사람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 여긴 눈이 내리는 나라였다. 티브이에서만 봐왔었던 눈. 한국은 내가 살던 곳과는 너무 달랐다. 네가 보는 세상은 항상 이 세상인데, 왜 너는 신기할 게 없는 똑같은 세상을 그렇게 바라봤을까. 왜 너는 내 눈을 피해 딴청을 했을까.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남자는 연신 웃었다. 엄마의 다리에 손을 올린 채로.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로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빌딩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직 그 남자의 집이 이사를 다 하지 못해서 여기서 며칠을 묵어야 한다고 했다. 남자는 엄마와 내 짐을 방에다 넣어주고 며칠 뒤에 보자는 말을 남긴 뒤 떠나갔다. 창밖 빌딩 맨 아래층에 그 남자의 차가 보였다. 뒷자석에 네가 타고 있는 차. 너는 보이지 않았지만 네가 거기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 떠나고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너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도시에 네 집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살게 될 집은 어딜까. 나는 하얀 지붕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빨간 벽돌에, 머리에 십자가 달린 집이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쌓인 창틀과 반원 모양의 창문이 달린 맨 위층이 내 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호텔의 커다란 침대가 내 방에도 있기를 바랐다. 희고 커다란 침대에서 잠들고, 반원 모양의 창문과 내리는 눈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잠에서 깨길 바랐다.

행복한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탁! 불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그 남자가 나와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그 남자는 빨리 짐을 챙기라고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아침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의 옷차림이며, 까치집이 된 머리, 옷가방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 창밖은 아직 어두웠는데, 전등이 너무 눈부셔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시린 눈을 비비며 짐을 챙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누르는 남자와 달리 엄마는 차분해 보였다. 어디 가냐고 묻는 내 물음에 엄마는 대답 대신에 엄마 목의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둘러 주었다.

그 남자의 차는 트렁크가 열린 채로 호텔 로비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 손에서 짐 가방을 빼앗다시피 가져가고 트렁크에 집어 던졌다. 너는 짐 가방이 내던져지는 소리에 깬 것 같았다. 너도 나처럼 눈을 비비고 있었다. 너는 엉덩이를 일으켜 창가 쪽으로 가서 내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한국의 새벽은 더 추웠는데, 너는 무릎이 다 보이는 짧은 잠옷 위로 파카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너는 어깨를 움츠린 채로 손을 허벅지 밑으로 넣고 다리를 조금씩 떨고 있었다. 남자는 운전대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면서 거칠게 운전했다. 엄마는 흔들리는 차에서 말없이 조수석 손잡이만 잡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그 도시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건물 사이를 지나지 않았고 얕게 눈이 쌓인 도로만이 계속되었다. 어느새 남자는 진정이 되었는지 창문을 내리고 연거푸 담배를 태웠다. 눈발인지 재인지 모를 조그맣고 하얀 가루가 창문 사이로 날아 들어왔다. 너는 거친 기침과 함께 파카 깃을 올리고 목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면 허리가 드러나서, 너는 깃을 올렸다가, 다시 파카를 아래로 잡아당기기를 반복했다.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찬바람이 낯선 것일까? 너는 두 눈을 찡그리고 차가운 바람에 몸서리쳤다. 그런 너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슬며시 내 목도리를 건넸다. 너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다 고맙다는 뜻인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파카 깃과 너의 하얀 목 사이로 목도리를 칭칭 둘렀다. 찬바람과 한바탕 싸움을 끝내고 너는 창문에 머리를 통통 부딪혀 가며 쌔액쌔액 졸았다. 기침도 옅게 잦아들었다. 찬바람에 괴로워하지 않는 너를 지켜보다 내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나도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붙였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작은 도시였다. 드문드문 아파트가 있었고, 우리가 함께 다니게 될 학교도 그곳에 있었다. 아파트들과 학교를 뒤로한 채 우리는 2층짜리 주택 앞에 도착했다. 집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남자는 창문을 내리고 노인과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노인은 창틈 사이로 엄마를 흘겨보고, 우리가 타고 있던 뒷자석 문을 갑자기 열어젖혔다. 기대고 있던 문이 왈카닥 열리자 너는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고, 하마터면 차에서 떨어질 뻔했다. 노인이 너에게 몇 살이냐 하고 물었다. 너는 대답을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파카 지퍼를 턱 밑까지 채워 올렸다. 나는 문이 왈카닥 열릴 때 보다, 네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앉았을 때 더 흠칫하고 놀랐다. 내가 너에게 준 목도리가 내 어깨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노인은 허- 하고 웃더니 차 문을 닫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노인이 집으로 들어가자 너는 다시 네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남자는 한숨을 깊게 내뱉고 담뱃불을 붙였다.

이 집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집이야. 일 년만 여기서 살면 돼.

남자가 말하면 네가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가 말하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1층은 노인이 사는 집이었다. 2층이 우리가 살게 될 집이었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높고 가팔랐다. 계단 옆으로 알루미늄 난간이 있었지만, 밑 부분이 헐거워서 손으로 붙잡으면 흔들렸다. 너는 네 몸만 한 짐 가방을 끌어안고 위태롭게 계단을 올랐다.

그 집의 현관문은 경첩이 녹슬었고 문고리가 헛돌았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문을 열었을 때 우리는 모두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집 안이 바깥보다 더 추워 보였다. 우리는 남자에게 등 떠밀려 그 집으로 들어갔다. 도저히 편히 누워 잘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깨진 화분, 모종삽, 박스 더미, 책 말고도 온통 발에 걸리고 차이는 것들로 바닥은 너저분했다. 우리는 모두 짐을 내려놓고 1층 노인의 집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아침 해의 이마가 저 멀리서 떠올랐다. 내 고향엔 이미 해가 떠서 날이 밝아졌을 것이다.

노인이 나와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뒤척이는 몸짓에 엄마와 너도 잠에서 깼다. 아침을 해결하고, 나와 남자와 엄마는 2층 집을 청소했다. 너는 아이팟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마당에 쪼그려 앉아 겨울 햇볕을 쬐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넷이 처음으로 거실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남자의 회사가 부도가 날 위기이고, 사업이 정리될 때까지만 여기 머물면 된다고 했다. 역시 남자가 말하면 네가 끄덕이고, 엄마가 통역을 하면 내가 끄덕였다.

남자는 항상 아침 일찍 나서서 저녁 늦게 들어왔다. 엄마는 더 이상 남자의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고, 오전에는 시내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채소를 다듬었다. 오후에는 아래층 노인의 집안일을 대신했다. 또 노인의 식사를 차리기도 했다. 엄마는 남자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났고, 남자가 들어오고 나면 잠을 잤다.

노인이 물을 쓰면, 2층에 물이 나오지 않았고 변기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수도관을 손보기 전까지 너는 등교하는 날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한창 사춘기였을 너에게 그 짓은 굉장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수도관 정비공이 왔을 때 나는 그 사람 옆에 붙어서 어디를 뜯고 어디를 붙이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엄마는 아침에 너를 학교에 보내고 나를 깨워서 근처 성당의 마을 도서관으로 등 떠밀었다. 그 도서관엔 항상 사람이 없었고, 당시에 나는 한글을 몰라서 영어로 쓰인 그림 책을 뒤적거리다 창가에 기대서 낮잠을 잤다. 수요일 아침에 조금 일찍 성당에 도착하면 아침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대부분 나이 든 마을 여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지나가면 향냄새가 났다. 미사가 끝난 성당에 잠시 앉아 있을 때, 빛이 들어오는 창문 근처로 아른거리는 정체 모를 연기가 좋았고, 그 냄새가 좋았다.

하루는 성당을 나서는 나를 신부님이 불러 세웠다. 처음에 나는 성스러운 공간에 몰래 들어온 나를 혼내려는 줄 알고 도망쳤다. 며칠 뒤에 도서관 창가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신부님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흠칫 놀라며 잠에서 깼다. 나는 어눌한 한국말로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신부님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번역기를 켜서 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몇 살이냐고, 집은 어디냐고, 학교는 안 다니냐고. 질문이 끝나고 신부님은 수첩을 찢더니 ‘Wed. 6am’라고 쓰인 종이를 내게 건넸다. 그 후로 나는 수요일마다 한 번씩 아침 미사에 참여했다. 물론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맨 뒤에서 노래를 부를 때만 같이 흥얼거렸다. 정체를 몰랐던 아른거리는 연기가 어디서 피어나는지 보았고, 마음이 편해지던 향기의 출처를 알았다. 세 번째 미사에 갔을 때 신부님은 한 쪽은 한국어로, 반대쪽은 우리말로 쓰인 성경을 가져다 주셨다. 외국인에게 받은 첫 선물은 성경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책도 성경이 되었다.

*

이곳으로 온 뒤로 5개월 만에 학교에 가게 되었다. 한국 교육과정을 받은 적이 없던 터라 입학이 늦어졌다. 내 서툰 한국어 덕분에 나는 너와 같은 학년에 같은 반으로 배정됐다. 네가 나를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와 거리를 유지한 채로 뒤따라갔다. 그리고 교복 단추를 목 끝까지 채웠다. 내 검은 피부가 조금이라도 덜 드러났으면 해서.

나는 서툰 한국어 정도가 아니라, 네가 알려 준 소리를 흉내 내는 정도로 자기소개를 했다. 반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코웃음 치는 애들, 하품하는 애들, 떠드는 애들, 신기하게 쳐다보는 애들은 있었는데, 박수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너를 빼고는. 너는 맨 뒷자리에서 손끝을 모아 조그맣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선생은 굳이 할 필요 없는 말들을 열거했다.

놀리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 정아와는 남매 사이다. 정아가 잘 챙겨줘라. 실제 나이는 너희보다 한 살 많다.

우리가 그 집으로 가게 된 첫 날, 차에서 아주 잠깐 가깝게 붙어 앉은 뒤에 두 번째로 우리가 가까이 붙어 앉게 되었다. 봄이 되었어도 너의 감기는 낫지 않았다. 너는 입을 막고 조그맣게 기침을 했다. 네 감기가 낫질 않자, 내 엄마는 우리 밥상에 모과차와 배즙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계속 졸았고, 너는 볼펜으로 나를 쿡쿡 찔러가며 깨웠다. 덕분에 내 교복 오른팔에는 까만 잉크로 얼룩지던 날들이 많았다.

우린 아침과 저녁을 항상 같이 먹었다. 나는 너에게 학교에서는 나 혼자 밥을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너는 자기도 친구가 없어서 나와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매운 것을 좋아하는 데 자신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하니 어울리지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너는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빼놓고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복습 겸이라며 이전 수업 내용을 나에게 가르쳤다. 이해할 수 없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 아아- 하고 아는 척을 했다.

지독한 기침으로 네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네가 있을 땐 나에게 관심도 없던 애들이, 네가 없는 날엔 내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리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거나,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지기도 했다. 어차피 절반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이었다. 나는 네가 병원을 가는 날에만 특별히 빌려준 아이팟을 끼고 그것들을 무시했다. 그러다 처음엔 서성거리던 놈들이, 나를 툭 치고 지나가기 시작했고, 좀 지나서는 노골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혼자 밥을 먹는 날이면 어디선가 밥풀이, 수업 시간에는 과자 부스러기나 지우개 똥이 날아들었다.

그것들이 밉지는 않았다. 가끔은 나를 두고 병원에 간 네가 미웠다. 네가 빨리 나아서 내가 학교에 혼자 남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한 여자아이와 화장실 앞에서 부딪혔는데, 나와 부딪친 팔을 탈탈 털면서 거의 발작을 일으켰다. 울다시피 소리를 지르면서 화장실로 달려가더니 손 세정제며 비누를 듬뿍 짜서 손과 팔을 씻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봤다. 그때는 한국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였는데, 나는 분명히 들었다.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을.

나 어떡해? 나도 그년처럼 바이러스에 걸릴 것 같아. 너무 더러워. 나도 죽는 거 아니야?

바이러스, 그때 알았다. 그 녀석들이 전에 나랑 일부러 부딪치고 나서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 때 하던 말이 ‘바이러스’였다는 것을. 그냥 너도 웃으면서 지나가지, 정아 얘기는 하지말지. 나는 그때 내가 놀림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보다 걔네들 입에서 네 이름이 나오는 것에 화가 났다. 너는 조금 독한 감기에 걸렸을 뿐인데, 네가 죽을 것처럼 말하는 것도 화났고, 혹시 네 감기가 정말로 나 때문에 더 심해지거나,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화났다. 나는 항상 내 목 끝까지 잠겨있던 단추를 다 뜯어 던지고 그 아이를 거세게 밀쳤다. 그 아이는 머리에 벽을 부딪치고 털썩 쓰러졌다. 여자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고, 남자 아이들은 나에게 달려왔다. 그대로 여자 아이에게 달려들어 얼굴에 흉터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 아이의 머리채를 붙잡으려는 순간 네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하라고, 제발 그만하라고. 너 때문에 더 쪽팔리니까 그만하라고. 너는 두 눈이 새빨개진 채로 화장실 앞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네가 화장실에 있는 줄 알았더라면 난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무시하고 반으로 돌아갔을 텐데. 너도 많이 당황했겠지만, 나도 상처를 받았다. 네가 그렇게 화를 낸 것도 처음 봤고, 내가 애들한테 놀림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네가 알게 된 것도 부끄러웠다. 나는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뒤돌아서 학교를 나갔다. 막상 학교에서 나왔지만 갈 곳은 없었다. 그래서 더 서러웠다. 먼저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픈 너를 두고 왔다고 혼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학교가 끝나기까지 3시간이나 남아서 나는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기 전 교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너를 기다렸다. 그리고 너를 다시 마주했을 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떠올렸다. 사과를 주면서 사과한다고 말하려다 참았다. 미안하다.와 사과하다.를 계속 중얼거렸다.

일어나. 미안해 내가.

내가 너에게 사과하기 전에 네가 먼저 나에게 사과했다. 네가 나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날.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 아이팟을 귀에서 빼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내게 너의 아이팟을 줬던 날. 난 아이팟 뒤로 숨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그건 숨는 것보다 숨 쉬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네가 만들어 줬던 플레이리스트에는 검정치마의 노래가 가득했다. 네가 항상 듣던 노래가 검정치마의 앨범이었을까 싶었다.

*

날 좋아해 줘.

아무런 조건 없이

니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

서울 아니면 뉴욕에서도

어제 막 찾아온 사춘기처럼

……

날 좋아해 줘 월요일 아침에도

내 옆에만 있어 줄래.

오빠 날 잡아줘 날 감싸 안아줘.

네 피부 속으로 날 숨겨주겠니

내가 아플 땐 더욱 더,

나근대는 목소리로 속삭여야 해

뜨거운 말로 내게 믿음을 줘

그래도 내가 싫어진다면

그건 아마 너의 잘못일 거야

*

중략…….

*

네 아빠, 그러니까 그 남자의 일은 계속 꼬여만 갔다. 일 년은 이 년이 되고, 삼 년이 되었다. 남자는 점점 늦게 일어났고 집에는 빨리 돌아왔다. 엄마는 쪽잠을 자다가 남자가 올 시간에 맞춰 상을 차렸다. 집에 돌아온 남자는 항상 술을 마시고 거실에서 담배를 태우다 잠에 들었다. 너는 네 아빠의 그런 모습이 싫었고, 나는 내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대부분 성당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교에도 도서관이 있었지만, 오후 다섯 시면 문을 닫았다. 가끔 성당에서 영화를 틀어주곤 했는데, 우린 그날을 가장 좋아했다. 미사에 나갈 때마다 신부님은 성경 맨 앞 페이지에 도장을 찍어줬다. 도장을 열 개 채우면 원하는 영화를 틀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도 되냐고 물었는데, 너는 내 등짝을 때렸다. 그 영화는 좀비가 나오는 영화였는데, 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때렸다.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엄마한테 내가 청불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고 일렀다.

너는 가끔 내 엄마를 엄마라고 했다가 아줌마라고도 했다. 엄마라고 부를 때면 내 엄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너는 헛기침을 하고 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노인은 건강이 안 좋아졌다. 아래층을 지나갈 때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노인의 기저귀를 갈고 씻기기도 했다. 노인은 엄마에게 돈을 쥐어 주면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얘들도 좋은 것 좀 먹이라고 했다. 삼계탕이나 갈비탕, 전복죽 같은 요리를. 엄마는 그럴 때마다 한 솥을 끓여서 우리를 먹였다. 너는 항상 나보다 닭다리나 전복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 남자는 술을 마시면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으로 변하는 버릇이 생겼다. 엄마가 남자보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남자는 마시던 술병을 엄마에게 집어 던졌다. 병이 깨져서 엄마가 다치는 날도 생겼다. 또 네가 저녁에 늦게까지 공부를 하느라 뒤적거리기라도 하면, 남자는 잠에서 깨서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해가 지면 남자는 집에 돌아왔다. 이미 밖에서 술이 취해서 돌아올 때가 많았다. 한 번은, 노인의 밥상엔 닭고기를 올리고 내 밥상엔 고작 계란말이냐며 밥상이 부실해졌다고 상을 엎기도 했다. 또 네가 집에 늦게 돌아오면 어딜 싸돌아다니다 늦게 들어오냐면서 물건을 집어 던지고 문을 발로 차기도 했다. 그리고 혼잣말로 네 엄마 욕을 했다. 내 엄마는 네 귀를 막고, 너를 네 방으로 밀어 넣었다. 네 엄마 욕을 하는 네 아빠를 내 엄마가 말렸다. 그럴 때마다 너는 아이팟을 끼고 풀었던 문제집을 또 풀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술에 취해 잠이 들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그 남자 몰래 과일을 깎아서 네 방 앞에 두고는 했다.

그 남자가 네 엄마 욕을 하고 나면 다음 날에 너는 내게, 엄마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진짜 너를 낳은 엄마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왜 나를 버리고 갔는지, 왜 저 남자를 사랑했는지, 나는 왜 낳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엄마 얼굴을 잊은 것 같아 슬프다고도 했다. 영원히 물어볼 수 없는 것은 누구한테 물어야 하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잊을 아빠 얼굴이 없었다. 애초에 기억이 없었으니까.

하루는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엄마가 화장실 구석에서 남자의 얼룩진 옷을 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깨진 병을 치우다 손이 베어 한 손은 붕대를 감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낑낑거리고 있었다. 술에 취해서 잠들어 있는 그 남자를 노려봤다. 지금 내가 덮치면 그 남자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옆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너를 생각해서 참았다. 처음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가 미웠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이 오지 않는 곳, 나와 엄마가 사랑하는 것들만 가득한 내 고향.

물건을 부수고 집어 던지던 남자의 손버릇이 너와 엄마에게로 향했다. 너는 뺨이 부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생겼고, 엄마는 노인의 밥상을 차려주지 못하는 날이 생겼다. 내가 남자에게 덤벼든 날도 있었지만, 그러고 나면 너와 엄마를 더욱 괴롭혔다. 남자가 집을 나서지 않는 날에는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그 남자와 같이 있는 것도 싫었지만,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그 남자가 엄마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엄마는 식당 일이 끝나면 더욱 자주 노인의 집으로 내려갔다. 그 남자에게는, 노인이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인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고 있었다. 엄마는 노인을 핑계로 그 남자로부터 도망친 것이었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로부터 노인에게로. 엄마는 사랑했던 남자를 피해 노인의 집으로 자꾸만 내려갔다.

남자는 엄마를 찾으러 함부로 노인의 집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엄마 말로는 노인과 남자는 전에 비지니스 파트너였다고 했다. 남자는 엄마를 찾으러 노인의 집에 찾아가는 대신, 위층에서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대부분의 시간을 노인의 집에서 지내려고 하자 남자는 노인과 엄마의 관계를 의심했다. 저녁에 엄마가 위층으로 올라오면 남자는 낯부끄러운 말들로 노인과 엄마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팟 뒤에서 숨을 쉬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는 내게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노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노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고 그 아들은 외국인과 결혼했다고 했다. 외국에서 크게 하던 사업이 어려워져서 노인은 한국으로 왔고, 아들은 사업에 미련이 남아 그곳에 남아있다고 했다. 그 아들은 아저씨와 친구인데 엄마도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노인이 말이 없고 몸이 아파서 괴팍해 보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엄마를 마치 며느리처럼 여긴다고 했다.

엄마가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하는 일이 생겼다. 엄마는 남자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남자는 빚쟁이들이 자신을 쫓아다닌다며 큰 시내로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남자는 괜히 노인 탓을 했다. 노인네 옆에 있다가 병이 옮았다고, 너도 곧 그렇게 될 거라고, 병신 둘이 놀아나더니 잘 됐다고. 학교에서 애들이 나를 ‘바이러스’라고 놀렸던 게 떠올랐다. 엄마는 마스크를 겹겹이 끼고 노인에게 오토바이를 빌려 병원에 갔다. 그리고 노인의 약과 엄마의 약을 같이 받아 왔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직감한 것 같았다. 기침은 심해졌는데 엄마가 먹는 약의 양은 줄어들었다. 밤에 잠든 엄마 옆에서 숨죽여 귀를 기울이면 쉬익쉬익하고 공기가 새는 소리가 들렸다. 거친 엄마의 숨소리에 잠들 수가 없었다. 가방에서 아이팟을 꺼내 가슴에 얹어두고 양손을 포갰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였더라. 나는 엄마가 곤히 자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어릴 때 엄마가 항상 나를 지켜봐 줬듯이.

*

I like watching you go

밖으로 보이는 조그만 점이

먼지만큼 작아지도록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

내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빠는 엄마가 아플 때 어떻게 했을까. 나는 아빠를 닮았을까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는 엄마가 못된 남자를 따라 한국에 온 것을 알고 있을까. 꿈에 한 번 나오지 않는 아빠의 얼굴을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 그렸다. 내 짧은 코와 두꺼운 쌍꺼풀을 아빠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

중략…….

*

엄마의 장례식은 노인의 도움으로 치러졌다. 폐렴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 너의 기침이 잦아들었는데, 엄마가 네 기침을 가져갔나 싶었다. 장례식엔 엄마가 일했던 식당 주인과 직원 몇 명이 왔다. 또 머리가 희고 주름이 많은 사람도 몇 명 있었는데, 아마 아래층 노인의 친구들 같았다. 그 남자가 자리에 없어서 내가 상주 노릇을 했다. 노인들은 밥을 먹으면서 언제 저런 며느리가 있었냐고 수군거렸다.

영정사진 속 엄마는 내 기억 속 엄마보다 젊고 하얬다. 엄마는 군데군데 흰머리가 있었는데 사진 속 엄마는 흰머리가 없었다. 엄마는 옅게 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너는 울다 지쳐서 잠에 들었고, 잠에서 깨면 다시 울었다. 너는 입관할 때,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다고 울다가, 울음을 그친 줄 알았더니 엄마 손을 잡고 다시 울었다. 노인은 병든 몸을 이끌고 장례식에 와서 나를 찾았다. 네 엄마가 너한테 주고 간 것이라면서 봉투를 건넸다. 봉투엔 통장과 편지가 있었다. 삐뚤빼뚤한 한글 편지는 너와 같이 읽었고, 우리말로 써진 편지는 혼자 읽었다. 나보다 네가 더 많이 울어서 그 편지는 너에게 줬다. 엄마는 편지에 너를 딸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너도 가끔 내 엄마를 엄마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통장엔 사천만 원과 현금이 조금 들어있었다. 이 돈이면 내 고향으로 돌아가서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또 이 돈이면 네가 원하던 대학교를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자는 엄마가 죽고 난 후 밤마다 엄마 방을 뒤적거렸다. 이리저리 내팽개쳐진 엄마의 물건을 네가 다시 정리했다. 너는 그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또 울었다. 남자는 재수 없게 울고 지랄이냐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노인이 그날 장례식장에서 나에게 했던 얘기.

사람은 누구나 죽어서 하늘로 간다. 이럴 때일수록 밥을 챙겨 먹고,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밥과 국이 짠 것은 소금 때문이 아니라 눈물 때문이다. 눈물은 삼키고 소금은 녹아서, 언젠가 마르고 사라진다.

노인은 엄마가 죽고 나서 간병인을 고용했다. 간병인의 요리 솜씨가 나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는지 간병인이 자주 바뀌었다. 노인의 밥도 간이 맞지 않아 짰을까 궁금했다.

*

중략…….

*

엄마가 죽고 한동안 남자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날은 정장을 차려입고 나가서 며칠이 지나고 완전히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남자는 한 번 외출하고 들어오면 이틀을 잠만 잤다. 너는 남자에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방해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네 대학 합격 발표가 있던 날 우린 너의 손바닥만 한 휴대폰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나도 덩달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먼저 확인하겠다고 했다. 아니, 너는 동시에 보자고 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화면을 가렸던 손바닥을 서서히 치웠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이 아홉 글자에 우리는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일어났다. 밖에 네 아빠가 자고 있어서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언젠가 배웠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역설이라고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 우리는 소리 없이 아우성을 내질렀다. 우리는 아주 뜨겁게 기뻐했다.

한 가지 문제라면, 네가 대학에 가려면 서울로 가야 하는데, 네 아빠가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네가 다시 서울로 가면 이 집엔 나와 그 남자만 남게 되는데 나는 여기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다. 엄마가 내게 남긴 사천만 원이면 네가 대학도 가고 서울에서 어떻게 집이라도 구해서 살 수 있었다.

너는 신이 나서 학교 주변 맛집을 검색하고 유튜브에 학교 홍보 영상을 검색해 보면서 내내 감탄을 했다. 네가 끼고 있던 아이팟 한 쪽을 빼서 내 귀에 꽂았다.

*

부산 집 화단엔 동백나무 꽃이 피었고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안부를 물어 볼 때면,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죠.

거긴 벌써 봄이 왔군요.

하지만,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눈 비비며 겨울잠을 이겼더니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

네게 여길 떠날 거냐고 물었다. 그래도 네 아빠가 가끔은 보고 싶지 않겠냐고 물었다. 너는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네가 여길 떠나버리면 나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도망가자. 네 손을 잡았다. 우린 서로를 사랑하니까. 내 엄마와 네 아빠가 했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의 따뜻한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자, 멀리로.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는 우리만 있어도 행복하니까. 그곳에서 우리 둘 만을 위한 집을 사고, 차돌박이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끓여 먹고, 빔 프로젝트로 영화를 볼 때 내 어깨를 내어줄게. 가자, 새로 태어날 곳으로. 우릴 혐오할 시선이 없는 곳으로. 너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끝. 정말 네 이야기일까. 그 녀석의 이야기는 맞는데 진짜 그 녀석의 이야기일지는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빗자루를 찾으려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그 녀석의 이야기를 읽었다. 제목을 붙이고, 조금만 다듬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을 사랑하는 오빠. 피……, 피는 심장에서 나와서 다시 심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심장에 여과 기능이 있다면 헌혈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녀석은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내 엄마와 네 아빠가 했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은 무슨 사랑일까. 아무렴 어때.

무심결에 나는 내 마지막 공모전에 그 녀석의 소설을 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 충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망가진 내 계획에 그 녀석의 소설이 운명처럼 나타났으니까. 어쩌면 그 녀석은 영감을 나와 한 대화에서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지 않을까. 어디에도 뱉어진 적이 없는 이야기니까. 내가 아니었다면 언젠가 낡은 상자에 담긴 채로 버려졌을 이야기니까. 그 녀석이 나에게 준 선물이니까. 오랜만에 꺼내 입은 바지에 만 원짜리 지폐가 들어있는 일과 다를 게 없으니까. 내 이야기는 다 물에 젖어 사라져 버리고, 그 녀석의 소설이 여기 이렇게 안전하게 있다는 건 정말 운명일지도 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나는 그 국방 노트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이게 진짜 그 녀석의 이야기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착잡한 마음에 그 녀석의 이야기에 등장한 밴드의 노래를 검색해서 들었다. 가사가 좋은 노래를 하나 찾았다.

그대가 가고 싶은 섬, 나는 못 가요

알다시피 내 지은 죄가 오늘도 무겁네요.

우리가 알던 그 장소는 무덤이 되었겠죠

추억을 고이 덮은 채, 무궁화가 한가득

태평양 저 멀리 피었네.

혼자 흥얼거리다 노래를 다 외워버렸다.

집에 도착해서는 그 녀석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베꼈다. 최대한 내 것이 돼야 하니까. 제목을 붙였다. 제목은 「그 이야기」.

*

11월.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그 이야기」가 유력한 수상 후보에 올랐다고 했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여전히 「그 이야기」의 구 할 구 푼이 내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다른 공모전이나 문예지에 이름 한 번 올라간 적이 없는 나였는데, 울고 불며 기뻐했어야 했는데, ‘그 이야기’에 남매처럼.

상을 받게 되면 소감을 뭐라고 써야 하나. 이 영광을 그 녀석에게 돌립니다? 아닌데,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텐데. 꼭 제목을 붙여주겠다고 말해놓고. 그 녀석은 아마 자기 소설이 「그 이야기」가 돼서 상을 받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도 한 번도 못 타본 상을 내 이름으로 냈더니 덜컥 됐다고 하면 당황할 텐데.

왜 나는 여태껏 내가 써온 이야기로는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하고, 폭우에서 건져낸 그 녀석의 이야기로 이제야 겨우 상을 받게 되는 걸까. 내게 필요한 글 쓰는 재능은 그 녀석에게 있었고, 그 녀석이 필요한 한국 피가 섞인 한국인의 이름은 나에게 있었다. 우린 서로 필요한 것이 달랐고, 그것은 교환하거나 섞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 피가 오염되어서 다른 데 섞일 수 없던 것처럼. 그 녀석은 한국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한글로 소설을 쓰는 것처럼. 다른 데 섞이지 못하는 내 피는 여전히 내 몸 안에서 돌았고, 다른 데 뱉어지지 못한 그 녀석의 이야기는 내게서 뱉어졌다.

그 녀석을 향한 묘한 질투심이 들었다. 왜 나는 이렇게 쓰지 못했나. 나는 순도 구십구 퍼센트 한국인이고, 그 녀석은 순도 영 퍼센트 한국인인데.

*

12월.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튼튼한 대한민국 국방 노트 앞표지가 너덜거렸다. 뒷주머니에 노트를 꽂아 넣고 집에서 나왔다.

느리게 눈이 내렸다. 해가 살짝 떠서 발밑의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밟혔다. 숨을 크게 마시면 찬 공기가 폐 깊숙이까지 느껴졌다. 바람이 없고, 기압이 낮아서 입김이 뭉게뭉게 크게 나왔다. 토요일이라 공장 바로 앞 공원에 트랙을 도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나서는 매일 출근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공장이었다. 창고와 생산 라인 입구를 향해 먼저 출근한 이들의 발자국이 쭉 찍혀있었다. 점심을 먹고 곧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전직 근무자들이 보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난로 옆에서 손을 녹이고 있었고, 나는 반장이 있는 사무실에 들렀다. 반장은 막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는 듯했다. 반장에게 할 말이 있었다.

아이고, 반장님 주무시고 계셨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물량 어때요? 다행이다, 그럼 좀 쉬엄쉬엄 할게요. 그……. 반장님 혹시 퇴근하시기 전에, 이번 주는 주급으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급하게 살 것이 생겨서요. 감사합니다. 필승!

주임은 대답은 없고, 눈을 감은 채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날 저녁은 김밥과 우동 맛 컵라면이었다. 부식으로 귤이 조금 있었다, 외국인들은 이미 김밥을 난로에 올려놓고 덥히고 있었다. 나는 귤만 하나 챙겨서 아무도 없는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 표절 들키면. 표절 처벌. 한국 외국인 작가. 중고 노트북. 대학생 노트북 추천. 가성비 노트북.

퇴근길에 아까 먹지 않은 김밥과 컵라면을 챙겼다. 귤도 챙기려다 야간 근로자들이 먹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여서 그냥 두고 나왔다.

퇴근 버스에 앉아 있는 절반은 우리 공장 노동자들이었다.

휴대폰을 꺼내 부재중 목록의 그녀가 내게 보냈던 문자들을 읽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한 번도 답장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답장이 없는 상대에게 혼자 축하하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했다.

답장을 늦게 해서 미안합니다. 사정이 생겨서 상을 받기가 힘듭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 죄송하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녀에게 더 가까이 가서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고맙다는 말보다 길어져서 미안했다.

은행 앱에 들어가서 주급을 확인했다. 사십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괜찮은 중고 노트북들이 많았다. 아무렴 어때, 한글만 켜지면 되니까.

뒷주머니를 뒤적여서 그 노트를 꺼냈다. 아까 집에서 나올 때 넣어두었던 것을 하루 종일 깜빡하고 있었다. 어느새 눈은 그치고 기온이 낮아졌다. 마스크 때문에 숨을 쉴 때마다 안경에 김이 서렸다. 도로가 얼어서 차들이 바닥에 붙어 기어가듯 했다. 차들의 라이트 앞으로 연기들이 일렁거리며 지나갔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를 읽었다. 이게 그 녀석이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그 녀석의 이야기라면 너희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은 따뜻한지, 차돌박이가 들어간 된장찌개의 맛은 어떤지. 만약 너희를 만나게 되면, 이 노트를 돌려주고 싶었다. 노트를 가슴 안주머니에 넣었다.

중고 물품 거래 커뮤니티에 괜찮은 매물이 있었다. 댓글을 남기고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대학생이라고 했더니, 삼만 원을 깎아줬다. 자기는 얼마 전, 졸업했고 취업 기념으로 더 좋은 노트북을 샀다고, 고생하라고. 노트북은 깨진 곳 없이 멀쩡했다. 전 주인의 손때가 여기저기 묻어있었지만 관리가 잘 된 노트북이었다. 정말 마지막 소설을 이 노트북으로 쓰겠다고 다짐했다.

노트북 키보드에 글씨가 지워진 부분들이 있었다. S, P, C가 지워지고 A와 E만 남은 스페이스바를 두드렸다. 쓸만한 문장이 떠올랐다.

장미는 바위라 불러도 향기가 난다.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서 노트북을 덮으려다 말고 첫 문장이 맘에 들어서 곱씹었다. 이 노트북으로 정말 내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새 것 같은 중고 노트북으로.

제목은, 제목은 「아는 사람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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