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강의를 듣다가 ‘한국인이 쓴 글’이 한국 문학인지, ‘한국말로 쓴 글’이 한국 문학인지 궁금했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얘기할 때는 여성 이주 노동자의 삶이 언급되었다. 「아는 사람 얘기」와 「그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이주 노동자가 한글로 소설을 쓴다면 어느 범주에 들어갈 것인지 궁금했다. 장미는 바위라 불러도 향기가 나는 것처럼, 이름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입대 전 아르바이트를 했던 술집 주방의 베트남 여성 이주 노동자는 나와 동갑이었다. 아이가 생기고는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녀는 대나무 이파리에 밥을 쪄서 내게 준 적이 있다. 그녀는 나 대신 잔반통을 버려준 적이 있다. 우연히 시내에서 그녀를 마주쳤을 때 그녀의 배는 많이 불러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어눌한 한국어로 아이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낳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애를 키우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전역 후엔 막일도 했다. 현장에는 나이도 모르는 중앙아시아 남성 이주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곰방’을 쳤다. 조금 쉬고 싶을 때, 그들은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척했는데 난 그게 퍽 웃겼다. 그들에게 오늘 씹을 껌을 건네면, 다음 날엔 내게 사탕을 쥐여 줬다. 그들은 색이 벗겨진 구형 SM5에 여섯 명씩 낑낑거리며 타고 퇴근했다. 임금이 밀리고 그들은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과 학교를 오가다 다른 공사 현장을 지나칠 때면, 그들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다른 술집을 가도 주방에서 그녀가 “싸장님~”을 부르면서 나올 것만 같다.
글을 길고 유려하게 쓰거나, 짧고 깊이 있게 쓰는 것이 어려워서 「아는 사람 얘기」와 「그 이야기」는 지우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이 이야기들은 시간 순서가 섞여 있고,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다. 미숙함과 전 동료들에 대한 서툰 호기심이 글을 중구난방하고 무질서하게 했다.
행여 이 이야기를 접한다면 두 이야기의 일들이 최대한 사실처럼 느껴지길 바란다. 「아는 사람 얘기」를 읽으면서, ‘나’와 필자의 얼굴이 겹치기를 바란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와 당신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주 노동자의 얼굴이 겹치기를 바란다.
끝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내게 부단히 쓰고 다시 고쳐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국어국문학과 임환모 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