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선 과제인 발포 명령 책임자·암매장 진실 규명 안돼
피해자 아닌 가해자 중심 보고서
청문회나 공청회, 전문가 의견 청취 부재
지난 2018년 3월 13일 ‘5·18민주화운동(5·18)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특별법)이 제정되고 2019년 12월 27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출범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27일 5·18진상조사위의 공식적인 조사 활동이 4년 만에 종료되었다. 5·18진상조사위는 총 17개의 직권조사 중 15건은 ‘진상규명’을 나머지 6건은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 2월 29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 개별보고서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진상규명은커녕 오히려 왜곡을 조장하고,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부실한 보고서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특히 5·18진상조사위의 최우선 과제였던 최초 발포 명령 책임자를 찾는 과제와 암매장 진실은 진상규명 불능 처리됐다.
기존에 진상규명된 내용, 법원 판결보다 후퇴한 보고서이자 교차검증 없이 나열식으로 서술되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 보고서라는 비판과 △광주 시민단체 △전문가 의견 수렴 △공청회 등 보고서 초안 심의 절차 부재 문제가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개별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했다.
자위권 발동 근거로 왜곡 조장
진상규명 불능 처리된 6건의 직권조사 결과보고서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보고서는 무기고 피습과 군·경 피해보고서 2개다. 문제가 되는 이유는 두 보고서가 전두환 즉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 근거를 제공하며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군이 먼저 무장 후 공격했다거나 시민 폭력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
11공수여단 권용운 일병의 사망 원인은 지난 2022년 고등법원, 전두환 회고록 관련 재판에서 시민군이 아닌 계엄군의 장갑차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다. 이미 사법부에서 판결이 완료된 내용이지만 보고서에서는 시민군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문제다.
또한 5·18 당시 사망한 22명의 군인 중 14명은 시민과 관계없는 군인 간의 오인교전이 원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아 시민이 군인을 사망으로 이끌었다는 왜곡의 여지를 남겼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경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를 시작하자, 시민들은 이를 방어하는 차원에서 오후에 무기고에서 무기를 피탈했다. 무기고 피습이 오후에 이루어졌다는 여러 진술과 자료들이 있다. 그러나 보고서에서는 전두환 보안사가 갖고 있던 전남도경 상황일지와 같이 왜곡의 정황이 다분한 자료를 교차검증, 신빙성 판단 없이 증거로 사용하며 피습 시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다.
최우선 과제인 군의 발포 경위 및 책임소재, 암매장 진실에 대한 결과보고서는 부실한 부분이 다수다. 특히 1980년 5월 27일 발포 경위는 진상규명이 되었고, 발포 명령자는 대법원판결에 따라 전두환을 포함 5명으로 인정이 되었다. 그러나 ‘진상규명 불능’ 결정은 발포 경위나 명령자가 전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 문제다.
계엄군이 시민 사살 후 암매장을 행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약 20명이 넘는 계엄군의 진술이 존재한다. 다만 암매장된 시체를 재수습해 현재 유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나 이 또한 사실이 전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인식된다.
한편 군·경 피해보고서는 본래 직권조사 대상이 아니었으나 특별법이 일부 개정되는 과정에서 추가되었다. 문제는 핵심과제인 암매장 관련 개별보고서가 50여쪽에 불과한 것과 다르게 군·경 피해보고서는 10배 정도 많은 514쪽이나 된다.
5·18 기록에 대한 은폐·왜곡·조작 보고서 또한 진상규명 불능 처리됐다. 이는 5·18 이후 전두환 7년, 노태우 5년 총 12년을 신군부가 집권하며 5·18 왜곡 조직을 만들고 대부분의 문서를 위조·변조했기 때문이다.
전원위원회, 특별법상 권한 충분히 사용 안 해
5·18진상조사위의 조사과정과 절차상의 문제도 있다. 먼저 앞서 말했듯 전원위원회(위원회)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진상규명 결정’과 ‘진상규명 불능 결정’ 단 두 개뿐이라는 점이다. 진상규명 불능 결정은 조사 대상이 되는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특별법 제38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고, 시행령 제11조에 따르면 공청회 개최로 국내외 관계 전문가 의견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원회는 주어진 권한을 충분하게 활용하지 않아 부실한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구체적인 진술이 있음에도 추가 조사를 실시하지 않거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설계 및 계획이 없었다는 점, 제대로 된 중간 점검도 없었다는 점도 문제다.
기우식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대책위) 대변인은 “개별보고서는 위원회의 충분한 심의가 없어 왜곡·부실보고서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종합보고서에서는 반드시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의 심의 과정이 철저해야 한다”며 “어떻게 종합보고서를 공개하고 전문가, 시민 의견을 청취할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고 심의 과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정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종합보고서가 작성된 후에도 개별보고서의 왜곡 부분이 바로잡혀지지 않는다면 관련 판결문 등을 증거로 제출할 것이다”며 “법원에 왜곡 부분이 수정·삭제되지 않는 한 공개·발행·배포를 금지하는 내용의 가처분을 신청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진상조사위 활동 결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하는 학술세미나가 13일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2호관 광주은행홀에서 진행된다. 김희송 5·18연구소 교수와 김 위원장이 각각 발제하며 이후 민병로 5·18연구소 소장이 토론에 참여한다.
5·18진상조사위 위원회는 종합보고서를 만들고 심의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채택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위원회 종합보고서 회부 일정이나 초안 공개에 대한 내용은 공지된 바가 없다.
5·18진상조사위는 오는 6월 26일 종합보고서를 펴내면 모든 활동이 종료된다. 4년간 조사한 자료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다.
※ 5·18진상조사위가 공개한 조사결과보고서와 조사활동보고서, 김 위원장의 ‘5·18진조위 개별조사보고서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