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계획 8년 만에 기념관 개관
마을 주민들이 토지 기부하기도

지난 1일 윤상원 기념관에서 기자가 하성흡 작가의 그림 를 보고 있다.
지난 1일 윤상원 기념관에서 기자가 하성흡 작가의 그림 를 보고 있다.

지난달 17일 윤상원 기념관(기념관)이 8년 만에 개관했다. 기념관은 윤상원 열사가 태어난 광산구 천동마을에 지어졌다. 윤 열사는 우리 대학 정치외교학과 71학번 학생이다. 1978년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에 취업한 그는 같은 해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으로 다시 광주에 내려왔다.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며 시민군 대변인으로 시민 항쟁을 이끌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사후에는 함께 들불야학에서 활동한 박기순 열사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기념관은 1층 기획전시관과 2층 상설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전시관에는 하성흡 작가의 <님을 위한 행진곡-윤상원 일대기전(展)>이 오는 7월 31일까지 개최된다. 기념관 중심에는 하 작가의 그림 <부활>이 크게 걸려있다. 영혼결혼식을 한 박 열사와 윤 열사가 손잡은 모습 아래 5·18민주화운동(5·18) 당시의 상황들이 그려져 있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 앞에 서있으니 윤 열사의 눈빛에 압도되는 듯했다. 기념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윤 열사의 동상은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제작했다. 그는 왼손에 총을, 오른손에 책을 들고 있으며 허리 부근에는 사망원인인 총상이 묘사돼 있다.

하성흡 작가의 그림.
하성흡 작가의 그림.

상설전시실에는 윤 열사의 일기 사본을 포함해 5·18 당시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윤 열사가 사망하기 하루 전 민주투쟁위원회 대변인 자격으로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내용도 있다. 외국 기자가 계속 저항하면 인명피해만 늘어날 것이라 말하자 윤 열사는 “우리는 최후의 1인까지 투쟁할 것이다”며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면 우리는 패배할 것이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고 답했다.

 

부지 결정·예산안 문제…개관까지 다사다난

기념관 건립계획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현 주차장 부지에 기념관을 건립하려 했지만 토지 소유주와의 마찰로 새로운 기념관 부지를 정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 이에 천동마을 측은 자치 회의를 통해 2020년 6월 현 기념관 부지를 기부했다. 김봉욱 광산구청 관계자는 “기부 과정에서 마을 내 여러 찬반 의견이 많았다”며 “주민 회관과 경로당을 기념관 건물에 편입시켜 시설을 개선 시켜주는 조건으로 주민들과 협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념관 부지가 결정되고 2021년 9월 광산구청 주도하에 계획이 세워졌다. 2022년 12월 착공을 시작했으나 예산안 문제 등으로 공사 기간이 또다시 지체됐다. 김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예산안을 다시 구성해야 했다”며 “보조금을 확보하는데 시간이 오래 소요됐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윤 열사 관련 내용들의 사실 확인과 오류 사항을 파악하기 위한 오랜 검증 기간으로 인해 개관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념관 개관 소식에 조연지(사회·23)씨는 “윤 열사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었는데 기념관을 통해 5·18과 윤 열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다”며 “자신보다 민주화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념관은 10시부터 17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해 있다. 천동마을에는 기념관 외에도 윤 열사의 생가와 추모관이 있다.

김운경, 김서경 작가의 윤상원 열사 동상.
김운경, 김서경 작가의 윤상원 열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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